짝사랑 중인 분께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여쭤보면 가끔 "행복하다"는 대답이 제일 먼저 나와요. 그런데 같은 마음을 주변에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말은 전혀 다른 쪽을 가리키죠. 한쪽에서는 행복이라고 부르는 마음이 다른 쪽에서는 서둘러 끊어야 할 버릇이 되는 거예요. 좋아하는 마음이 어쩌다 눈치부터 봐야 하는 일이 됐을까요.
26살 남자분이 들은 말도 꼭 그랬어요. 같은 동아리의 한 사람을 1년째 좋아하고 있는데, 그녀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다 알아요. 정작 그녀 쪽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어요. 싫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없이 평소처럼 웃으며 이야기하고 단체 모임에서는 그의 옆자리에 앉기도 하는데, 둘이 따로 보자고 하면 돌아오는 답은 늘 "요즘 바빠"예요. 그의 주변에서는 "짝사랑 그만해", "시간 낭비야", "자존감 없어 보여"가 한마디씩 돌아왔고요. 그럴 때마다 그가 되묻고 싶은 말은 하나였어요. "나만 좋아하는 거 맞아, 근데 그게 왜 나쁜 건데? 상대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아닌데."
짝사랑을 털어놓았다가 이런 말을 몇 번 들어 본 분이라면, 요즘은 아예 입을 다문 채 혼자서만 애태우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 사람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뀐 날을 기억해 두고, 단체 사진이 올라오면 그 사람이 누구 옆에 서 있는지부터 찾아보죠. 단톡방에 그 사람이 남긴 말에 내가 먼저 답을 달아도 될지 한참을 망설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문득 억울해지는 밤이 와요. 그냥 좋아했을 뿐인데 왜 다들 그만두라는 말만 하는지, 그 말에 돌려줄 대답을 고르다가 잠을 놓치는 밤이요.
그 억울함을 그냥 삼키지 않았으면 해요. 짝사랑 상담 1,300건을 나눠 보면, 짝사랑을 한 덩어리로 묶어 "그만해" 한마디로 정리하는 게 얼마나 거친 일인지 드러나거든요. 삶을 넉넉하게 채우고 있던 건강한 짝사랑이 29%, 삶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던 해로운 짝사랑이 45%였어요. 해로운 쪽이 더 많았다는 것도 숨기지 않을게요. 같은 이름 아래 이렇게 다른 두 마음이 섞여 있으니, 따져 봐야 할 건 짝사랑이라는 이름보다 그 짝사랑이 지금 내 삶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입니다. 내 짝사랑이 29% 쪽에 서 있는지 45% 쪽으로 기울었는지는 아래 신호 세 가지로 가늠할 수 있고, 45% 쪽이라면 덜 아프게 끝내는 길도 있어요.
우리가 짝사랑에 유난히 가혹하다는 건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집착", "미련", "자존감 부족" 같은 딱지가 먼저 날아들고, 짝사랑 중이라고 말하면 거의 100%의 확률로 "그만둬"가 돌아오니까요. 박도사 상담에서 짝사랑 중인 분들께 지금 감정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는 10명 중 3명 이상이 "행복하다"고 답했어요.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가 하루를 밀고 가는 힘이 되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을 볼 생각에 아침부터 설레고, 그 사람을 떠올리며 하루를 여는 일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주는 거죠. 그런 사람에게 "그만 좋아해"라고 말하는 건, 그 살아 있는 감각을 그만 느끼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25살 여자분이 그랬어요. 직장 동료를 1년째 좋아하고 있었고, 그게 짝사랑이라는 건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았죠. 그래도 그 사람 책상 위의 파란 머그잔만 떠올려도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기다려졌고, 그 사람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자기 일에도 전보다 공을 들이게 됐어요. 그러니 주변에서 "그만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가 갸웃해졌대요. "내가 왜 그만해야 해?" 짝사랑이 이렇게 한 사람의 하루를 단단하게 받쳐 주고 있다면, 그걸 굳이 나쁘다고 부를 까닭이 없어요.
짝사랑이라는 말도 한번 짚고 갈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짝사랑을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로 풀어요. 비슷하게 쓰는 외사랑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고,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일'로 올라 있어요. 사전의 뜻은 거의 같지만, 요즘은 상대가 내 마음을 아느냐로 둘을 가르기도 해요. 상대가 모르는 채 혼자 좋아하면 짝사랑, 알면서도 받아 주지 않으면 외사랑이라고 부르는 식이에요. 앞의 26살 남자분처럼 그녀도 알고 주변도 다 아는 마음이라면 요즘 말로는 외사랑 쪽이에요. 이름이 무엇이든, 아래 신호 세 가지는 똑같이 적용돼요.
짝사랑이 삶을 갉아먹기 시작했다는 신호 세 가지
짝사랑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그 마음이 삶을 잠식하기 시작할 때예요. 첫째, 그 사람의 반응 하나에 하루의 날씨가 정해질 때예요. 단체 모임에서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 준 날은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까지 들떠 있어요. 그러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걸 본 날은 그 장면 하나에 저녁 내내 가라앉죠. 이런 날이 되풀이된다면, 그 사람의 표정 하나가 내 하루를 쥐고 흔들고 있는 거예요.
둘째,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가지 않는 시간이 1년 이상 이어질 때예요. 답이 없어도 모임에 나가면 그 사람 자리부터 눈으로 찾고, 곁에 꾸준히 머무는 것으로 마음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주에서는 이런 한결같음을 인성에서 찾는데, 인성이 강한 사주는 한번 생긴 마음이 잘 변하지 않아서 짝사랑을 평균 14개월 이상 이어 가는 경향이 있어요. 1,300건을 사주 구조별로 나눠 보면 걸리는 시간이 구조에 따라 뚜렷하게 갈려요. 인성이 강한 사람은 평균 2.1년, 비겁이 강한 사람은 평균 0.6년이었어요.
비겁이 강한 사람은 서로 대등한 자리를 중요하게 여겨서, 한쪽만 애태우는 시간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고백하든 돌아서든 일찍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읽어요. 같은 짝사랑이라도 타고난 구조에 따라 머무는 시간이 이만큼 다르니, 오래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이상한 사람이 되지는 않아요. 다만 1년이 넘도록 아무 진전이 없는데 다른 누구에게도 눈길조차 가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사랑이라기보다 몸에 밴 습관이 됐을 수 있습니다.
셋째, 좋아하는 마음이 안전한 핑계가 됐을 때예요. 가장 깊은 얘기인데,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을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실제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관계 앞에서 아주 그럴듯한 거절 사유가 돼 주거든요. 안전한 거리에서 좋아하는 동안에는 거절당할 일도, 실망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어요. 그 대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상처받는 게 두려워 먼저 거리부터 두는 마음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는 5살 때 현관에서 배운 불안이 지금의 연애를 움직이는 이야기를 읽으면 조금 더 또렷해져요.
28살 여자분은 3년째 한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그사이 소개팅 제안이 여러 번 들어왔지만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라며 전부 거절했죠. 그런데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담에서 이렇게 물었어요. "그 사람이 이미 사귀는 걸 알면서도 짝사랑을 계속하는 이유가 뭔가요?"
대답 대신 긴 침묵이 먼저 왔어요.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어요. "사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요. 또 상처받을까 봐." 3년 동안 그녀를 지켜 준 건 그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가 세워 준 방패였죠.
그녀는 나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겁이 많았을 뿐이고, 한 번 다쳐 본 사람은 새로운 관계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되니까요. 그 겁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요. 다만 그 겁이 가져간 3년은 누구도 돌려줄 수 없어요. 그 긴 침묵은 지금도 제 마음에 오래 남아 있어요.
이쯤에서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 남았을 거예요.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할 가능성은 있을까요. 여기서는 듣기 좋은 말만 드릴 수가 없어요. 앞의 26살 남자분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단체 모임에서 그녀가 옆자리에 앉는 건 반가운 신호로 읽을 만해요. 하지만 둘이 만나자는 제안만 번번이 "요즘 바빠"로 비켜 간다면, 그 비켜 가는 쪽이 더 분명한 대답일 수 있어요.
반대로 내가 흘리듯 한 얘기를 며칠 뒤 그 사람이 먼저 꺼내 묻고, 모임이 끝나면 돌아가는 길이 달라도 굳이 같은 방향으로 걷는 일이 쌓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져요. 다음 달 계획을 말하다가 자연스럽게 내 자리를 끼워 넣는 말이 늘어날 때도 그렇고요. 이런 호감을 알아보는 법은 '좋아해'라는 말 없이 건너오는 호감 신호 다섯에 모여 있어요. 마음의 크기와 그 마음이 닿을 가능성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신호가 없다면, 이제는 이 짝사랑이 내 삶의 어느 빈칸을 채워 주고 있는지 물어볼 때예요. 정말 그 사람이 필요한 건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상태가 필요한 건지를요.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다 보면 계속 품어도 되는 마음인지, 이제 내려놓을 마음인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요.
끝내야 할 때 덜 아프게 끝내는 세 가지 방법
첫째, 고백하고 답을 받는 거예요. 계속 마음에 담아 두는 대신 한 번은 분명하게 표현해서, 결과가 어떻든 불확실함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에요. 어렵지만 가장 깔끔하게 끝나요. 다만 오래 혼자 키운 마음일수록 상대는 아직 출발선에 서 있을 수 있어서, 언제 어떻게 꺼내느냐가 결과를 크게 바꿔요. 그 마음을 꺼낼 때 무엇이 상대를 버겁게 하는지는 혼자 앞서간 마음이 고백 앞에서 부딪히는 벽에서 먼저 가늠해 보세요.
둘째, 일부러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 보는 거예요. 소개팅이든 새로운 모임이든, 낯선 사람들 틈에 나를 한번 들여놓아 보는 거죠. 그 사람이 유일한 선택지처럼 느껴지는 건, 어쩌면 내가 다른 선택지를 모두 닫아 두었기 때문일 수 있거든요. 처음 몇 번은 어색하고 자꾸 그 사람과 비교하게 되겠지만, 비교가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 말고 다른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이에요.
셋째, 연락을 끊고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거예요. 가장 고통스럽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장 빠른 길이에요. 매일 얼굴을 보면서 마음을 끊어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연락을 끊는 건 나를 회복시키려고 내리는 결정이에요. 동아리나 회사처럼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이라면 완전히 끊기는 어렵죠. 그럴 땐 둘만 주고받던 연락부터 줄이고, 단체 모임에서는 다른 사람들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무는 것만으로도 숨 쉴 거리가 생겨요.
어느 방법을 고르든, 지나온 짝사랑의 시간이 통째로 버려지지는 않아요. 짝사랑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설레는지, 어떤 말에 마음이 열리는지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그 사람의 어떤 면에 끌렸는지, 그게 나에게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를 짚어 두면 다음 사람을 고를 때 눈이 한결 맑아져요. 매번 닿지 않는 사람에게만 마음이 가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사람보다 끌림의 모양을 먼저 들여다봐야 해요. 그 모양을 알아보는 데는 차가운 사람에게 번번이 마음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거예요.
여기서부터는 칼럼 말고 편지로 쓸게요. 받는 사람은 지금도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당신이에요.
당신이 누군가를 이만큼 오래, 이만큼 조용히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당신 안에 쉽게 꺼지지 않는 불씨가 하나 있다는 뜻이에요. 그 불씨를 시간 낭비라고 부르는 말들 앞에서 더는 눈치 보지 않았으면 해요. 그 대신 한 가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세요. 이 짝사랑이 나를 자라게 하고 있는지, 제자리에 멈춰 세워 두고 있는지요. 자라게 하고 있다면 계속 좋아해도 괜찮아요. 멈춰 세워 두고 있다면, 이제 그 불씨를 나에게도 조금 덜어 줄 차례예요.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줄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날 당신의 짝사랑은 끝나는 대신 완성돼요. 사랑을 보내는 일은 버리는 일과 다르니까요. 그때까지 당신이 당신 편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례 속 인물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나이와 세부 상황을 바꿔 적었어요.
내 사주와 그 사람의 사주를 함께 펴 보면, 이 마음이 닿을 수 있는 인연인지와 전한다면 언제가 좋은지 짚어 드릴 수 있어요. 짝사랑이 늘 같은 모양으로 되풀이된다면 심층 분석에서 그 결핍의 뿌리를 함께 봐요. 썸 상담 알아보기 → · 심층 분석 알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