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미술관에서 전시 설치를 하다가 부동산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전세 만기가 다가오니 연장할지 나갈지 정하라고요. 마흔둘에 이사 하나가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저한테는 어디로 가느냐가 앞으로 몇 년의 삶을 정하는 문제라 쉽게 답이 안 나왔어요. 지금 집이 낡긴 해도,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며 아침에 드는 볕이며 정든 게 많아서 더 그랬고요. 예전에 궁합 상담을 받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엔 사주 문답으로 이사 문제를 물었어요. 연애도 아닌 이런 걸 물어도 되나 싶었는데, 자유 질문이라길래 용기를 냈어요. 이 집에서 혼자 산 세월이 십 년이 넘어요. 정든 물건이 나가고 들어오는 자리마다 제 삶의 마디가 새겨져 있어서, 여길 떠난다는 게 단순히 짐을 옮기는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어요. 어디로 가느냐가 곧 앞으로의 저를 정하는 것 같아 더 조심스러웠고요. 선생님은 제가 올해 자리를 옮기면 마음이 붕 뜨기 쉬운 시기라, 급하게 결정하기보다 내년 이른 봄까지는 지금 자리를 지키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방향으로는 지금 사는 곳보다 볕이 잘 들고 트인 곳이 제 기운을 살린다고 짚으셨고요. 월별로 언제 계약하고 언제 움직이면 좋은지가 정리돼 있어서, 막연하던 게 일정표처럼 잡혔어요. 이사 하나에 뭐 이렇게까지 싶다가도, 사실 저는 그 결정 앞에서 몇 주를 잠 못 잤거든요. 그 막막함에 방향이 생긴 것만으로도 신청한 값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