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해놓고, 그날 밤부터 매일 그 사람 계정을 몰래 들여다봤어요. 마흔하나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남들을 예쁘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정작 제 관계는 제 손으로 망가뜨린 거예요. 새 프로필 사진이 올라올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저를 보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고요. 홧김이 아니라 나름 오래 고민한 이별이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어요. 그 사람이 안 쓰고 두고 간 면도기를 세면대에서 치우지 못한 채 3주를 보냈어요. 그걸 볼 때마다 손이 멈췄거든요. 아침마다 그 자리를 지나칠 때면, 내가 정말 뭘 버린 건지 그제야 실감이 났어요. 그 면도기 하나가 온 집을 그 사람 자리로 만들어놨더라고요. 남의 얼굴엔 종일 예쁜 색을 입히면서, 정작 제 눈 밑 그늘은 지울 수가 없었어요. 붓을 들 힘도 없이 거울 앞에 앉아 있던 아침이 많았거든요. 근데 이미 헤어지자고 한 마당에 무슨 낯으로 다시 잡나 싶어서, 방법이라도 찾아보자고 재회 상담을 받았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보시더니 '당신이 떠난 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관계가 정체된 걸 못 견디는 성향이 그 시기에 유독 강해진 것'이라고 하셨어요. 상대는 아직 당신을 향한 마음이 남아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먼저 손을 내밀진 못하는 구조라고요. 그러니 재회를 원한다면 떠난 사람이 먼저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 제가 닫은 문이니 제가 먼저 여는 게 순서라는 말이, 아프지만 맞았어요. 자존심을 세우자면 상대가 먼저 연락해야 맞다고 우기고 싶었지만, 문을 닫은 손이 제 손인 걸 저도 알았으니까요. 인정하는 데 며칠이 걸렸어요. 방법도 구체적이었어요. 곧바로 미안하다고 매달리기보다, 늦여름쯤 자연스러운 계기로 짧게 안부를 건네고, 그다음은 상대가 반응할 여지를 주라고요. 조급하게 밀어붙이면 상대의 자존심이 더 닫힌다고 하셨어요. 떠난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되 매달리지는 말라는, 그 미묘한 선을 짚어주신 게 핵심이었어요. 급한 마음에 다 쏟아냈으면 오히려 그 사람을 더 뒷걸음치게 했을 거예요. 그 방향대로 8월 말에 용기를 내서 짧게 연락을 했어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몇 번 대화가 오가더니 그 사람이 사실은 많이 기다렸다고 하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며칠을 세면대에 그대로 둔 면도기가 그제야 떠올라 조용히 눈가가 뜨거워졌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오히려 서로를 조심스럽게 아끼며 다시 만나고 있어요. 제 손으로 놓친 사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건, 제 성향이 왜 그 시기에 그런 결정을 하게 했는지 이해하고, 상대의 닫힌 마음을 어떤 순서로 여는지 알았기 때문이에요. 무작정 매달렸으면 절대 안 됐을 거예요. 매일 몰래 훔쳐보던 그 계정을, 이제는 그 사람 옆에서 같이 웃으며 들여다봐요. 제가 부순 걸 제 손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거든요. 후회는 끝이 아니라, 방향만 있으면 시작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후회로 시작한 상담이 이렇게 끝날 줄은 저도 몰랐어요. 다시 만나기로 한 날, 3주를 못 치우던 세면대의 면도기를 비로소 그 사람 손에 웃으며 돌려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