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그날 무슨 얘기로 시작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잘 안 나요. 설거지였는지 약속 시간이었는지, 그 정도로 사소한 거였어요. 그런데 말이 말을 물고 늘어지다가, 제가 먼저 그럼 그만하자는 말을 뱉어버렸어요. 진심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잠깐 저를 보더니, 알겠다고, 그러자고 했어요. 그렇게 3년이 끝났어요. 마흔을 코앞에 두고 이런 식으로 관계가 무너지니까, 슬픔보다 먼저 온 건 무서움이었어요. 이 나이에 내가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다 내가 망친 건 아닐까. 그 사람이 쓰던 머그컵을 싱크대에서 치우는 데 며칠이 걸렸어요. 손잡이가 이가 나간 컵이었는데, 그걸 버리자니 관계를 버리는 것 같고 두자니 매일 아침 그게 눈에 밟혀서요. 그 사람 없이 맞는 아침이 제일 낯설었어요. 3년을 둘이 쓰던 알람 소리에 눈을 떠서는, 옆자리가 비었다는 걸 매일 새로 깨달았거든요. 출근 준비를 하다가도 문득 오늘 뭐 입을까 물어보던 습관이 남아서, 핸드폰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놨어요. 미운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의 하루에 제 자리가 더는 없다는 게, 그게 견디기 힘들었어요. 밤이 되면 그 생각이 더 또렷해져서, 불을 끄고도 한참을 눈만 뜨고 있었어요. 누구한테 하소연을 해도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요. 근데 그 시간이라는 게 저한테는 그냥 버텨내야 하는 벌 같았어요. 그래서 뭐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재회 상담을 신청하면서도 큰 기대는 안 했어요. 어차피 제 입으로 뱉은 말이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같이 보시고는, 이 이별은 마음이 떠나서 생긴 게 아니라 두 사람 다 그 시기에 감정을 눌러 담는 기운이 강해서, 정작 하고 싶은 말 대신 가장 날카로운 말이 먼저 튀어나온 거라고 짚으셨어요. '두 분은 헤어지자는 말로 싸운 게 아니라, 붙잡아 달라는 말을 서로 못 해서 어긋난 거예요.'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어요. 제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한 게 있었거든요. 사실 그날 저는 그 사람이 저를 붙잡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요. 그 속마음을 신청서에 한 글자도 안 적었는데, 어떻게 그걸 그대로 짚으셨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지금 당장 연락하는 건 그날의 감정을 다시 불러올 뿐이라고, 두 사람 기운이 가라앉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짧고 담백하게 안부부터 여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막연히 기다리라는 게 아니라 언제, 어떤 온도로 다가가야 하는지가 적혀 있으니까,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해졌어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한테 연락도 못 했고요. 그런데 적어도 제가 그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리고 그게 정말 끝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밤에 잠을 좀 잤어요. 아직 아프긴 해요. 그래도 혼자 어둠 속에서 저를 탓하기만 하던 밤은 지나간 것 같아요. 돌아보면 그날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만하자가 아니라, 나 좀 봐달라는 거였어요. 그걸 이제야 제대로 알아요. 그 한마디를 못 해서 3년이 흔들렸다는 게 아직도 아프지만, 이제는 그게 무슨 마음이었는지 아니까 다음이 덜 두려워요. 저 같은 실수를 한 분이 이 글을 볼 것 같아서, 그 얘기부터 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