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MBTI가 상극인데 실제로는 잘 맞는 커플, 이게 가능한 걸까요. 저희가 딱 그래요. 검사만 돌리면 안 맞는다고 나오는데, 3년째 큰 문제 없이 만나고 있거든요. 서른여섯이 되니 주변에서 결혼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와요. 이 사람과 평생을 가도 될까, 지금은 좋지만 성향이 이렇게 다른데 나중에 부딪히진 않을까. 그 불안이 밤마다 자꾸 고개를 들어서 궁합 상담을 받아봤어요. 사실 검사지로도 이미 답이 나온 마당에 사주는 또 뭐가 다를까 싶긴 했어요. 솔직히 그 불안의 정체는 이런 거였어요. 지금 좋은 건 알겠는데, 이 좋음이 십 년 뒤에도 유효할까. 성향이 이렇게 반대인 두 사람이 신혼의 콩깍지가 벗겨진 뒤에도 서로를 견딜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게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보니,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그 문을 열기가 무서웠어요. 그래서 남들은 청첩장 얘기 할 나이에, 저는 혼자 이 사람과 나의 다름을 계속 저울에 올려놓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리포트를 읽으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검사지가 지금 두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말한다면, 선생님은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다른데도 서로 끌리는가를 짚어주셨거든요. 출발점 자체가 아예 달랐어요. 선생님은 저희 두 사람 사주를 나란히 놓고 보시더니, 제가 밖으로 뻗는 기운이 강하고 상대는 안으로 모으는 기운이 강한데, 이게 겉으로는 정반대라 안 맞아 보여도 실제로는 한쪽이 벌인 걸 다른 쪽이 수습하는 방식으로 맞물린다고 하셨어요. 제가 일을 크게 벌이고 다니면 남자친구가 조용히 뒷정리를 하는 사람이거든요. 이걸 대체 어떻게 아셨지 싶어서 잠깐 소름이 돋았어요. 저희 연애를 옆에서 지켜본 것도 아닐 텐데요. 더 좋았던 건 갈등 패턴을 하나도 숨기지 않은 거예요. 두 사람이 부딪히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고, 제가 즉시 풀고 싶어 하는데 상대는 시간을 두고 삭이는 쪽이라 이 시차가 싸움을 길게 끌 수 있다고요. 실제로 저희가 싸우면 늘 그 지점에서 어긋나요. 저는 지금 당장 대화하자고 하고, 이 사람은 좀 있다 얘기하자고 하고. 그게 성격 결함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의 차이라는 걸 알고 나니, 다음에 싸울 때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을 자신이 조금 생겼어요. 한번은 사소한 일로 냉전이 사흘을 간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날 저녁에 바로 풀고 싶어서 계속 얘기하자고 했는데, 이 사람은 지금은 말고 좀 있다 하자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거든요. 그게 저를 무시하는 걸로 느껴져서 삼 일을 냉랭하게 보냈어요. 그때는 그냥 서로 안 맞아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리포트를 읽고 나서야 그게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였다는 걸 알았어요. 이 사람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지, 저를 밀어낸 게 아니었던 거예요. 지나간 그 사흘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동안 저희 관계를 남들한테 설명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성향 검사만 들이대면 안 맞는다고 나오니까, 친구들도 반농담으로 너희 용케 만난다고 했거든요. 저조차도 이 사람이랑 오래갈 수 있을지 은근히 자신이 없었어요. 좋긴 한데,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십 년 이십 년을 버틸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리포트는 그 다름 자체가 저희를 오래 가게 하는 축이 될 수 있다고, 다만 그러려면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짚어줬어요. 막연하던 불안이 구체적인 숙제로 바뀌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지속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특히 오래 남았어요. 무조건 잘 맞는다는 뻔한 말이 아니라, 이 조합은 서로의 속도 차이를 인정하는 법만 익히면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유형이라는, 조건이 붙은 이야기였어요. 그 조건이 명확하니까 오히려 더 믿음이 갔어요. 앞으로 뭘 조심하고 뭘 지키면 되는지가 손에 잡혔거든요. 리포트를 읽은 뒤로, 저희 싸움의 결이 조금 달라졌어요. 이 사람이 좀 있다 얘기하자고 하면, 예전엔 무시당했다고 발끈했는데 이제는 아 지금 이 사람은 삭이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고 기다려줄 수 있게 됐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먼저 정리된 얼굴로 나와서 말을 걸더라고요.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으니까 오히려 대화가 빨리 풀리는 거예요. 다름을 결함으로 보던 시선을 거두니까, 같은 사람이 다르게 보였어요. 검사지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던 제가, 이제는 저희 관계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됐어요. 유형이 안 맞는다고 미리 겁먹을 게 아니라, 왜 우리가 이렇게 오래 잘 지내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게 제일 큰 수확이에요. 이제 누가 너희 안 맞지 않냐고 물으면, 안 맞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르게 맞물리는 거라고 웃으면서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대답 하나를 손에 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을 했어요. 검사지가 못 준 그 대답을, 여기서 받았으니까요. 5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