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파일럿이에요. 스케줄이 워낙 불규칙해서, 며칠씩 감감무소식이다가 어느 날 불쑥 연락이 와요. 그때마다 이게 관심인지 그냥 심심할 때 찾는 건지 판단이 안 서서 몇 주를 끙끙 앓았어요. 답장 하나에 하루 기분이 결정되는 게, 스물다섯 먹고도 참 서툴다 싶었고요. 스물다섯, QA 테스터로 일한 지 이제 이 년째예요. 직업병인지 저는 확인이 안 되는 변수는 일단 최악값으로 처리하고 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 사람 연락도 딱 그렇게 다뤘어요. 답이 없으면 무조건 마음이 식은 거라고 최악의 결론부터 내려놓고 혼자 가라앉고 있었죠. 그 사람을 원망하다가 제 성격을 원망하다가, 밤이 그렇게 갔어요. 답장 하나 없는 화면을 붙들고 온갖 시나리오를 돌리다 보면,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제가 상상한 최악이 저를 더 아프게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그 사람 기운을 보시더니, 이런 사람은 연락의 빈도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만났을 때의 밀도로 표현하는 쪽이라, 뜸한 연락을 거리두기로 읽으면 오히려 완전히 어긋난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그 사람은 어쩌다 만나면 그 시간에 저한테 온전히 집중해주거든요. 답장은 느려도, 눈앞에 있을 땐 딴 데 한눈 한 번 안 팔고요. 저는 신호를 처음부터 잘못된 지표로 재고 있었던 거예요. 답장 속도라는 엉뚱한 눈금으로 사람 마음을 측정하고 있었던 거죠. 원망할 일이 아니라 읽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었어요. 다가갈 타이밍도 그 사람 스케줄이 트이는 무렵으로 콕 집어주셨고요. 솔직히 5만 원이 스물다섯한테 적은 돈은 아니라, 결제 버튼 앞에서 좀 망설였어요. 사회 초년생한테 5만 원이면 며칠치 점심값이잖아요. 그래도 몇 주를 갉아먹던 그 불안을 생각하면, 그 며칠치 점심값으로 몇 주치 밤을 되찾은 셈이라 값은 충분히 했어요. 그 부담 하나만 빼면 다 좋아서 4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