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그게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깨달았어요. 이 후회를 안고 사는 게 벌 같아서, 결국 재회 상담을 신청했어요. 마흔둘에 퍼포먼스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요. 숫자로 성과를 증명하는 일을 십수 년 하다 보니, 저는 관계마저 효율로 재는 버릇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제 기대만큼 빠르게 반응하지 않으면 답답해했고, 결국 우리 여기까지 하자는 말을 제 입으로 먼저 뱉었어요. 헤어질 땐 후련한 줄로만 알았는데, 두 달이 지나고 나니 그게 후련함이 아니라 도망이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문제는 제가 찬 입장이라는 거였어요. 이제 와 매달릴 염치도 없고, 무슨 낯으로 연락을 하나 싶었어요. 재회 상담을 신청하면서도 이건 좀 뻔뻔한 거 아닌가, 내가 차놓고 이제 와 되돌리겠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신청 폼을 채우는 손이 다 부끄러웠어요. 차인 사람은 위로라도 받는데, 찬 사람은 후회를 털어놓을 데조차 없더라고요. 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서, 누구한테도 이 마음을 못 꺼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를 조금도 나무라지 않으셨어요. 대신 제 구조를 정확히 짚으셨어요. 당신은 애정이 식어서 이별을 고른 게 아니라, 관계가 뜻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 먼저 끊어내야 덜 다친다고 믿는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가장 사랑할 때 가장 먼저 도망치는 패턴이 있다고 하셨어요. 정곡을 찔려서 잠깐 눈을 감았어요. 이 사람만이 아니라, 제 지난 연애들이 다 그렇게 끝났거든요. 제일 좋을 때 제 손으로 판을 엎는 거요. 상대에 대한 해석도 좋았어요. 그 사람은 제가 이별을 말했을 때 붙잡지 않았지만, 그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존심이 상한 채로 물러선 것에 가깝다고요. 저는 그동안 그 사람이 순순히 놓아준 게 정말 마음이 떠나서인 줄 알고 더 자책했는데, 그게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의 물러섬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좀 달라졌어요. 지금 제가 급하게 사과의 장문을 보내면 오히려 그 자존심을 건드려서 문을 닫게 만든다고, 그래서 순서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잡아준 방향은 이랬어요. 늦가을 무렵 그 사람 마음의 날이 한 번 무뎌지는 시기가 오는데, 그전에는 어떤 연락도 하지 말고 저부터 이 도망치는 패턴을 자각하는 데 시간을 쓰라고요. 그리고 그때가 오면 변명이나 재회를 앞세우지 말고, 제가 왜 그랬는지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짧은 메시지로 시작하라고 예시까지 적어주셨어요. 솔직히 처음엔 두 달이나 지났는데 무슨 시기 타령인가 싶었어요. 성과를 숫자로 당장 확인하며 사는 사람이라, 몇 달을 기다리라는 말이 제일 답답했거든요. 그런데 그 방향대로 조급함을 누르고 저를 들여다보는 동안, 제가 왜 매번 좋은 사람을 먼저 밀어냈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 오면 관계를 통째로 끊어서라도 제가 주도권을 쥐려 했던 거예요. 그게 저를 지키는 방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좋은 사람을 잃는 방식이었어요. 재회를 하든 못 하든, 이 패턴을 모른 채로 다음 사람을 또 밀어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어요. 이 리뷰를 쓰는 지금도 사실 조금 부끄러워요. 내가 걷어찬 관계를 두고 이런 상담까지 받은 게 우습게 보일까 봐서요. 그런데 이 리포트에서 제일 고마웠던 건, 저를 미련한 사람으로도 나쁜 사람으로도 몰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냥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 이런 순간에 이런 선택을 하기 쉽다고, 담담하게 설명해 준 것뿐이에요. 그 담담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어요. 누가 저를 나무랐다면 오히려 방어부터 했을 텐데, 나무람 없이 원리만 보여주니까 변명할 틈 없이 그냥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제 후회를 부풀리지도, 값싸게 달래지도 않고, 그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줬으니까요. 마흔둘이나 돼서 제 연애 습관을 이제야 처음으로 마주한 셈이에요. 요즘도 늦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며, 조급해질 때마다 그 도망치는 패턴을 설명한 문단을 다시 읽어요. 당장 사과 장문을 보내고 싶은 손을 그 문장이 붙잡아주거든요. 지금 보내면 그 사람 자존심을 건드려 문을 닫게 만든다는 말을, 매번 되뇌면서요. 평생 숫자로 즉답을 확인하며 살아온 제가, 처음으로 답이 늦게 오는 걸 견디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아직 그 시기가 오진 않았어요. 그래서 성사됐다는 후기는 아니에요. 다만 저는 이 리포트로, 제가 찬 게 그 사람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제 불안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것만으로도 이 두 달의 후회가 아주 헛되지는 않았어요. 다음에 또 좋은 사람이 온다면, 이번엔 제일 좋을 때 먼저 도망치려는 그 손을 한 번쯤은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흔둘에 배운 그 한 가지가, 앞으로의 저를 다르게 살게 할 거라 믿어요. 그거면 이 상담값은 충분히 한 거예요. 성사 여부를 떠나, 저는 이미 얻을 걸 얻었습니다. 5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