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다른 사람들 마음은 그렇게 잘 봐 주면서, 정작 네 마음은 왜 그러고 사니.' 친구가 저한테 한 말이에요. 뜨끔했어요. 마흔이고, 상담센터에서 일해요. 하루 종일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제 일인데, 3년 전에 이혼한 전남편 생각이 자꾸 나는 제 마음만큼은 저도 어쩌질 못하겠더라고요. 이혼까지 한 사이에 다시 마음이 가는 게 스스로도 이해가 안 돼서, 직업병처럼 저를 자꾸 분석만 하고 있었어요. 상담실에서는 내담자한테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저는 퇴근하면 그 감정에 이름표 붙이는 일만 반복하고 앉아 있었어요. 이 마음이 미련인지 진짜인지 제 눈으로는 도저히 판단이 안 서서 재회 상담을 신청했어요. 두 사람 사주를 나란히 놓고 선생님은 '두 분이 헤어진 건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그 시기에 두 사람 다 각자의 문제로 감정을 나눌 여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지금은 전남편 쪽에도 예전과 다른 변화의 기운이 들어오는 때라, 8월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접점이 생길 수 있다고 하셨어요. 솔직히 그 대목은 반쯤 흘려들었어요. 3년을 연락 한 번 없던 사람인데 무슨 접점이냐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난주에, 아이 문제로 정말 오랜만에 전남편한테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사무적인 얘기였는데 통화가 이상하게 길어졌어요. 끊고 나서 한참을 휴대폰만 들여다봤어요. 말씀하신 시기랑 겹치니까 등골이 서늘하더라고요. 남의 이야기는 그렇게 잘 정리해 주면서, 정작 제 이야기 앞에서는 왜 매번 결론을 못 냈는지 이제는 알아요. 저는 제 감정을 인정하는 게 무서웠던 거예요. 이혼까지 한 사람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면, 지난 3년이 다 부정당하는 것 같았거든요. 선생님은 그 감정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냥 왜 그때 그렇게까지 지쳤었는지를 먼저 보라고만 하셨어요. 그 순서가 저한테는 위로였어요. 상대를 다시 판단하기 전에 나부터 이해하라는 거요. 요즘 저는 퇴근하고 나면 내담자 파일을 덮고, 3년 전 그 시기의 저를 한 장씩 넘겨 봐요. 그때의 저는 누구한테도 힘들다는 말을 못 하고 혼자 다 짊어지고 있었더라고요. 전남편을 미워할 게 아니라, 그때의 저를 먼저 안아 줬어야 했던 거예요. 그걸 이제야 하고 있어요. 3년이나 지난 사람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한심해서, 저는 그 감정을 자꾸 미련이라는 창피한 이름으로만 불렀어요. 근데 선생님은 그걸 미련이 아니라 아직 매듭짓지 못한 감정이라고 다르게 불러 주셨어요. 이름 하나 바꿔 불렀을 뿐인데, 창피하던 마음이 들여다볼 만한 마음이 되더라고요. 남 얘기 들어 주는 게 직업인 제가, 정작 제 마음엔 그 다정한 이름 하나를 못 붙여 주고 있었던 거예요. 아직 재결합을 한다 만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선생님이 '다시 만나든 정리하든, 지금 당신이 할 일은 그 사람을 다시 판단하는 게 아니라 3년 전 당신이 왜 그렇게까지 지쳤었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하신 말을 붙잡고 있어요. 남의 마음만 들여다보던 제가, 처음으로 제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계기였어요. 감정에 떠밀리지 않게 저를 붙잡아 주는 그 한마디가 제일 고마웠어요. 혼자 끙끙 앓던 밤들이, 그 한 줄 덕에 조금은 덜 외로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