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신부 화장을 하다 말고 파우더 브러시를 든 채로 멍해진 적이 있어요. 눈앞의 신부는 세상 다 가진 얼굴로 웃는데, 저는 그 사람 답장을 반나절째 못 받고 있었거든요. 교대 근무라 원래 연락이 늦는 사람인 줄은 알면서도, 그 반나절 동안 저는 온갖 결론을 다 지었다 허물었어요. 마음이 식었나, 아니면 원래 이런 사람인가. 서른셋이나 먹고 답장 하나에 하루가 통째로 흔들리는 제가, 솔직히 좀 한심했어요. 그 사람 유니폼에서 나던 세제 냄새, 퇴근하고 오면 늘 하던 '오늘 몇 명이나 봤어' 하는 첫마디. 그런 사소한 게 자꾸 찾아와서 일하다가도 손이 멎었어요. 언젠가 제 작업대에 두고 간 손목 밴드가 서랍에 아직 있는데, 그걸 버리지도 돌려주지도 못하고 몇 주를 그냥 뒀어요. 썸 상담을 신청한 건, 이 답답함을 누구한테라도 쏟아내고 싶어서였어요. 확신이 안 서는 마음을 혼자 안고 있는 게 제일 힘들었거든요. 선생님이 제 사주랑 그 사람 흐름을 같이 보시더니, 이 사람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 자기 앞가림에 온 힘을 쏟느라 연락이라는 여유 칸이 통째로 비어버린 시기라고 짚으셨어요. 관심의 크기가 줄어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 자체가 바닥이라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이런 사람한테 서운함을 몰아서 표현하면 오히려 더 움츠러드니, 답장이 늦어도 가볍게 툭 안부만 건네며 문을 열어두라고 하셨어요. 그 대목을 소리 내어 다시 읽는데 목이 뻐근해졌어요. 저는 몇 주 내내 저를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고 있었더라고요. 연락이 뜸한 건 다 내가 부족해서라고요. 그게 아니었어요. 그게 다였는데, 이상하게 그날 밤엔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도 잠이 왔어요. 혹시 저처럼 답장 하나에 하루 기분이 끌려다니는 분이 있으면, 그 사람 세계에 지금 어떤 계절이 지나는 중인지부터 한번 들여다보셨으면 해요. 저는 그걸 알고 나서야 겨우 어깨에 힘이 빠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