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같은 취미로 만난 사람한테 느끼는 이 감정은 설렘일까요, 아니면 그냥 모임이 즐거운 걸까요. 러닝 크루에서 만난 사람을 두고 저는 몇 주째 그 물음만 되뇌었어요. 친구들 결혼 소식이 줄줄이 들려오던 참이라 그런지, 혼자 뛰고 돌아오는 길이 유독 허전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라도 붙잡고 싶은 건지 정말 이 사람이 좋은 건지 제 마음부터 헷갈렸어요. 헤어숍에서 종일 남의 머리를 만지고 손님들 연애 얘기를 들어주면서도, 정작 제 마음 하나는 가위 하나 못 대고 엉킨 채로 뒀어요. 뛰고 나서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 사람이 다른 크루원과 웃으며 얘기하는 걸 보면, 이유 없이 젓가락질이 느려졌어요. 질투랄 것도 없는 그 미묘한 서운함이 뭔지 몰라 혼자 당황스러웠고요. 이게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면 뭘까 싶다가도,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또 입을 다물었어요. 썸 상담에서 선생님이 그 사람 기운을 보시더니, 이 사람은 관계를 취미의 연장으로 편하게 두려는 성향이라 먼저 훅 들어오면 오히려 물러설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조급하게 고백하지 말고 함께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리며 신뢰부터 쌓으라고요. 다가갈 타이밍은 초가을께가 좋다고 짚어주셨고요. 확신도 없으면서 먼저 마음부터 쏟아내려던 제가, 그 성급함으로 좋은 인연 하나를 또 밀어낼 뻔했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그 뒤로 억지로 티 내지 않고 편하게 대했더니, 얼마 전 그 사람이 크루 모임 말고 따로 러닝 한번 가자고 먼저 제안하더라고요. 그 메시지를 받고 한참을 휴대폰만 뒤집었다 다시 켰다 했어요. 선생님이 말한 흐름이 정말 오고 있는 것 같아요. 확신이 없어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이제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니까 한결 가벼워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알림만 기다리던 밤이 무색하게, 이젠 제가 굳이 재촉하지 않아도 그 사람 쪽에서 먼저 거리를 좁혀와요. 혼자 재던 신호에 답이 오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요즘은 뛰는 길이 덜 외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