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6월에는 가까운 사람과의 말 때문에 마음 상할 일이 있으니, 그달만큼은 입을 아끼고 한발 물러서 계세요.' 지난봄에 받은 리포트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흔한 조심하라는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어요. 법무법인에서 비서로 일하다 보면 사람들 사이 오가는 말에 늘 신경을 쓰는 자리인데, 정작 저 문장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린 게 화근이었어요. 남의 말은 하루 종일 조율하면서, 제 입은 못 다스린 셈이죠. 변호사님들 사이 껄끄러운 말도 매끄럽게 옮기는 게 제 일인데, 정작 십 년 지기 앞에서는 왜 그 재주가 하나도 안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그 문장을 미리 새겼다면 그날 회의실에서처럼 한 박자 눌렀을 텐데 말이에요. 정말로 6월에,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랑 사소한 오해로 크게 틀어졌어요.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날따라 제가 유독 예민하게 받아쳤고, 서로 자존심 상하는 말을 주고받고 나서 연락이 끊겼어요. 돌아서고 나서야 제가 던진 말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며칠이 지나서야 리포트를 다시 꺼내 읽었는데, 조심하라던 바로 그달에, 조심하라던 바로 그 방식으로 일이 벌어진 걸 확인하고 손에서 종이를 놓지 못했어요. 미리 새겨뒀으면 그 말 몇 마디는 삼켰을 텐데 싶어 후회가 밀려왔어요. 그래서 이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이 관계가 회복은 되는 건지 추가질문을 신청했어요. 솔직히 시기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걸 직접 겪고 나니, 뭐랄까 조금 무섭기도 하고 자꾸 기대고 싶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걸 몇 달 전에 미리 아셨을까 싶으면서요. 끊긴 대화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먼저 연락할까 말까 손가락만 움직이던 밤을 보낸 사람이라면, 그 문장 하나에 얼마나 매달리게 되는지 아실 거예요. 저는 그 며칠 동안 리포트를 몇 번이나 다시 펼쳤는지 몰라요. 나중엔 조심하라던 그 대목을 수첩에 옮겨 적어두고, 출근길마다 들여다봤어요. 십 년 지기를 이렇게 잃나 싶어 명치가 뻐근하던 날들이었거든요. 밥을 먹다가도 그 애랑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 떠올라 수저를 내려놓곤 했어요. 십 년이 이렇게 한순간에 부스러지나 싶어, 사무실에서도 자꾸 손이 멈췄고요. 잘잘못을 따지자면 제가 먼저 날을 세운 게 맞아서, 후회는 온전히 제 몫이었어요. 선생님은 추가 답변에서 '이번 다툼은 두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당신이 그 시기에 유독 남의 말을 날카롭게 받아들이는 흐름 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상대를 탓하거나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 그 예민한 시기가 지나간 7월 중순 이후에 먼저 담담하게 연락을 건네라고 하셨어요. 사과의 형식이 아니라 안부의 형식으로, 그날의 시비는 다시 꺼내지 말고 그냥 잘 지내냐는 한마디면 충분하다고요. 매듭을 억지로 풀려 들지 말고, 시간이 무디게 만든 자리에 살짝 손만 얹으라는 말처럼 들렸어요. 당장 사과 문자부터 쏘려던 저를, 한 달 가까이 기다리게 붙잡아준 조언이었어요. 조급하게 굴었으면 자존심 대 자존심으로 또 부딪쳤을 거예요. 그 방향대로 7월 하순에 조심스럽게 연락을 했더니, 친구도 사실 먼저 연락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목이 잠깐 메었어요. 알고 보니 그 애도 저처럼 몇 번이나 메시지를 썼다 지웠던 거예요. 우리 둘 다 같은 밤에, 같은 화면을 열었다 닫으며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에요. 자존심이 뭐라고, 그 며칠을 서로 끙끙 앓았나 싶더라고요. 그 얘길 듣는데, 미안함과 안도가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매일 붙어 지내는 사이로 완전히 돌아간 건 아니지만, 조금씩 다시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제가 이 후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건, 리포트가 단순히 미래를 맞히는 종이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예요. 저는 그 조심하라는 문장을 흘려듣고 실수를 했지만, 그 덕분에 나중에라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방향까지 얻었으니까요. 처음부터 새겨들었다면 그 다툼 자체를 피했을지도 모르고요. 적어도 내 마음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알고 있으면, 그 흔들림에 휩쓸려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은 줄일 수 있겠더라고요. 그게 이 상담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거예요. 관계를 지키는 힘이 상대를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나를 먼저 아는 데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요. 혹시 예전에 받은 리포트를 저처럼 서랍에 넣어두고만 계신 분이 있다면, 조심하라고 짚인 그 시기만큼은 꼭 한 번 더 꺼내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어요. 저는 그 한 문장을 흘려듣고 십 년 지기를 잃을 뻔했지만, 다행히 늦게라도 붙잡았어요. 여러분은 저처럼 돌아오는 길을 헤매지 않으셨으면 해요. 미리 새겨 아는 것과 겪고 나서 아는 것은, 치르는 값이 영 다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