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헤어진 지 정확히 다섯 달째 되던 날 신청했어요. 마흔둘이나 먹고 이러고 있는 게 스스로도 좀 우습긴 했고요 ㅎㅎ 십 년 넘게 만나다 보니, 서로 설렘도 뭐도 없이 그냥 지쳐서 손을 놓아버린 사이였어요. 미워서 헤어진 게 아니라 둘 다 방전돼서 헤어진 거라, 오히려 더 답이 없다 싶었어요. 그 사람 칫솔을 버리는 데 삼 주가 걸렸어요. 세면대에 그대로 꽂혀 있는 걸 매일 보면서도 손이 안 갔거든요. 이별하고는 밤마다 그때 그 말만 안 했어도, 그때 내가 좀 더 다정했으면, 하고 저를 갉아먹었어요. 지친 티를 먼저 낸 것도 나였고, 마지막에 모진 말을 얹은 것도 나였으니까요. 십 년을 함께한 사람인데, 마지막 몇 달의 모진 장면만 자꾸 확대해서 저를 찔렀어요. 좋았던 날들은 다 어디 가고 그 장면만 남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자책이 제일 저를 못 살게 굴었어요. 이 나이에 재회 상담이라니, 좋은 소리 들으려고 5만원 쓰는 거 아닌가 저를 의심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두 분은 감정이 식은 게 아니라, 각자 삶에 지쳐서 관계를 돌볼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짚어주시는데, 그 한 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어요. 우리가 서로를 미워한 게 아니었구나, 그때의 나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서요. 어깨에 얹혀 있던 죄책감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그러고 얼마 안 돼서 그 사람한테 먼저 안부 연락이 왔어요. 별 내용도 아니었는데, 선생님이 말한 시기랑 얼추 맞아서 손에 쥔 폰을 한참 들여다봤어요. 답장을 썼다 지웠다 하느라 밤이 다 갔어요. 오래 만난 사이인데 이 짧은 안부 하나에 이렇게 조심스러워질 줄은 몰랐네요. 서두르지 말라던 말 붙잡고 천천히 가보려고요. 이 나이에도 답장 하나 쓰는데 손이 떨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