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결과지를 받자마자 두 번을 내리 읽었어요. 그리고 자기 전에 한 번 더요. 그럴 만한 밀도였어요. 무슨 상담이었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을게요. 다만 제가 놀란 건 분량이 아니라 내용의 촘촘함이었어요. 흔히 이런 거 보면 누구한테 갖다 붙여도 맞을 두루뭉술한 말로 페이지를 채우잖아요. 그런 문장이 거의 없었어요. 한 줄 한 줄이 저를 겨냥하고 있었어요. 낮에는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고 웃고 일하는 사람이라, 저는 제가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작성폼에 적은 몇 줄 안 되는 정보에서 선생님이 짚어낸 것들은, 정작 저 자신한테도 인정 안 하고 미뤄둔 부분이었어요. '결정을 미뤄놓고 상황이 저절로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는 한 문장에서 잠깐 멈췄어요. 견디는 거랑 미루는 걸 저는 그동안 헷갈리고 있었던 거예요. 사실 저는 힘들다는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에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괜찮냐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답하고 돌아서서 혼자 삭이는 쪽이거든요.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정작 제 상태를 저조차 잘 모르게 됐어요. 그런 저를, 몇 줄 안 되는 정보만 보고 이 사람이 저보다 더 정확히 짚어냈어요. 티 안 내고 견디는 게 어른스러운 건 줄 알았지 그게 저를 갉는 방식인 줄은 몰랐거든요. 화려한 위로는 없었어요. 근데 저는 위로보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했던 사람이라, 오히려 그 담백함이 더 좋았어요. 요란하지 않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진단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