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QA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뭐든 재현이 되고 원인이 밝혀져야 넘어가는 버릇이 들어요. 이별하고 나서도 저는 슬픔보다 먼저 로그를 뒤지듯 원인부터 찾고 있었어요. 어디서 어긋난 건지,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깨진 건지. 위로받으려고 상담을 신청한 게 아니라, 데이터를 하나 더 확보하는 마음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가 헤어진 경위를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 다 그 무렵엔 각자 지쳐 있었고, 그게 하필 같은 시기에 겹친 것뿐'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입 밖에 안 낸 부분을 먼저 짚으셔서 잠깐 화면을 멈췄어요. 저희는 마지막에 크게 싸우지도 않았거든요. 그냥 둘 다 조용히 방전돼서 서로 손을 놓은 거였어요. 그 조용한 소진을 어떻게 아셨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상대가 왜 그 시점에 연락을 줄였는지, 그 사람 나름의 흐름으로 풀어주셨어요. 제가 부족해서 밀려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문제로 가라앉는 구간이었다고요. 저는 그동안 제 코드 어디에 버그가 있었나만 뒤지고 있었는데, 애초에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아니까 이상하게 화가 천천히 가라앉았어요. 겉으로는 멀쩡히 출근하고 회의하고 티켓을 닫았어요. 점심엔 동료들이랑 웃으며 밥도 먹었고요. 아무도 제가 무슨 밤을 보내는지 몰랐어요. 퇴근하고 현관문을 닫는 순간에야 하루치 표정이 스르르 내려앉았어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견디는 게 제일 품이 많이 드는 일인데, 그걸 저 혼자 알고 있었어요. 이별을 데이터처럼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은 덜 아프고 싶어서였어요. 원인만 밝히면 감정은 안 건드려도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원인을 알고 나니 오히려 감정이 순해졌어요. 미워할 대상이 사라지니까, 붙잡고 있던 것도 슬그머니 힘이 빠지더라고요. 담담하게 정리됐어요. 다시 붙잡을지 말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래도 적어도 나를 탓하며 견디던 밤은 끝났어요. 그거면 충분히 값을 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