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약혼반지를 낀 손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겁이 났어요. 이 사람과 평생을 약속해도 되는 걸까. 다들 좋다는데 저 혼자 이유 없이 불안한 밤이 있었거든요. 반지가 손가락에 아직 낯설게 걸리던 그 무게가, 그날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어요. 항공정비 일을 하면서 늘 이중삼중으로 점검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라, 결혼도 마지막으로 한 번 점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궁합 상담을 받았어요. 마음의 안전핀을 한 번 확인하는 심정이었어요. 남들은 확신이 서서 하는 결혼이라는데, 저는 왜 이렇게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지 그것도 좀 서글펐고요.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같이 보시더니, '두 분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메워주는 조합인데, 특히 힘든 시기에 진가가 드러나는 관계'라고 하셨어요. 평소엔 티가 안 나도 위기가 왔을 때 서로를 놓지 않는 구조라고요. 그 말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제가 이 사람한테 끌린 이유가 딱 그거였거든요. 화려하진 않은데 힘들 때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거요. 제가 아팠던 날 말없이 죽을 끓여다 놓고 간 사람이었어요. 생색 한 번 안 내고, 다음 날 아침 빈 냄비만 조용히 챙겨 가더라고요. 그날 이후로도 그런 사람이라는 증거는 널려 있었는데, 저는 자꾸 안 보이는 것만 세고 있었어요.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도 저는 왜 늘 말로 확인받고 싶어 안달이었을까요. 그리고 저한테 '당신은 사랑받는 걸 자꾸 확인받고 싶어 하는데, 이 사람은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니 그 언어를 오해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제가 표현이 부족하다고 서운해하던 지점을 정확히 짚으셔서 소름이 돋았어요. 아, 이건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방식이 다른 거구나 싶었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서 서운했던 게 아니라, 제가 그 사람의 언어를 못 읽고 있었던 거예요. 그동안 서운함을 혼자 쌓으며 오해했던 시간이 아까울 만큼 명쾌했어요. 그 상담을 받고 나서 마음의 마지막 매듭이 풀렸어요. 결혼식 날짜를 잡았고, 준비하면서 그 사람의 무뚝뚝한 행동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여요. 청첩장 봉투를 밤새 같이 접어주던 손, 제 부모님 짐을 먼저 들던 어깨. 사랑한다는 말은 좀처럼 안 하는 사람인데, 손과 어깨가 대신 말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제는 그 서툰 언어가 어떤 고백보다 진하게 읽혀요. 저를 서운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이 사람의 사랑법이었구나 하고요. 결혼을 앞두고 이유 없이 불안해 뒤척이는 분이 있다면, 그 불안이 나쁜 신호가 아닐 수도 있어요. 저는 그 불안 덕분에 이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됐으니까요. 무작정 좋다는 말만 들었으면 오히려 이 확신이 안 생겼을지도 몰라요.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 점검을 마친 기분, 그게 참 든든했어요. 이제는 반지가 무겁지 않아요. 겁이 나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그 밤들이, 지금 와 보면 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려는 과정이었더라고요. 확신은 남이 주는 게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만큼 제 안에서 자라는 거더라고요. 불안했던 신부가 이렇게 든든한 마음으로 식장에 설 줄은 몰랐어요. 이유 없던 그 불안에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될 줄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