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소리 하나 안 나는 새벽 정비고에서 혼자 기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별생각이 다 듭니다. 스물아홉에 항공정비사로 일하고, 저보다 어린 여자친구와 결혼을 진지하게 얘기하던 참이었어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한데,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자꾸 겁이 났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평생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 나이 어린 사람 인생을 내가 붙잡아도 되나 싶어서요. 남자가 이런 걸로 흔들린다고 하면 우습게 볼까 봐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습니다. 겉으로는 결혼 준비 잘 되어가냐는 말에 그럼요, 하고 웃으면서 속으로는 매일 저울질을 했어요. 정비고에서 밤새 볼트 하나까지 확인하는 사람인데, 정작 제 마음은 어디가 헐거운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딱 한 번만 객관적으로 확인받고 싶어서 궁합 상담을 신청했어요. 기계는 매뉴얼대로 뜯어보면 어디가 문제인지 답이 나오는데, 사람 마음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리포트를 읽는데 예상 못 한 데서 목이 메었습니다. 선생님이 두 사람 사주를 같이 보시더니, 제가 겁내는 게 여자친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못 믿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뭐든 확실하지 않으면 손을 안 대는 사람이라, 결혼처럼 답이 딱 안 떨어지는 일 앞에서 유독 저를 몰아붙인다고요.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 오래된 습관이 저를 겁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걸 처음으로 누가 말로 정리해주니까, 그날 리포트를 붙잡고 좀 울었어요. 두 사람 궁합도 담백하게 짚어주셨어요. 여자친구는 밝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운이 강하고 저는 뒤에서 단단하게 받치는 구조라, 나이 차이가 오히려 서로의 속도를 맞춰준다고요. 제가 너무 신중해서 멈칫할 때 그 사람이 끌어주고, 그 사람이 들뜰 때 제가 잡아주는 그림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걸림돌이 아니라 톱니처럼 맞물리는 부분이었다는 게 위로가 됐어요. 사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늘 불안하게 사는 걸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걸 떠올리면 설렘보다 겁이 먼저 났어요. 저 사람을 저 불안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건 아닐까, 나 하나 못 믿는 놈이 어떻게 둘의 인생을 책임지나 싶어서요. 선생님이 그 겁의 뿌리가 여자친구가 아니라 제 안에 있다는 걸 짚어주셨을 때,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 하나를 누가 대신 이름 붙여준 기분이었습니다. 이게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못 믿는 거였구나, 그 한 줄이 저를 오래 붙잡았어요. 여자친구랑 처음 결혼 얘기가 나왔던 날도 사실 제가 먼저 말을 흐렸어요. 좋으면서도 덜컥 겁이 나서,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자며 슬쩍 넘겼거든요. 그 사람은 서운했을 텐데 티도 안 냈어요. 오히려 알겠다며 제 손을 잡아줬는데, 그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습니다. 선생님이 그 대목을 짚으시면서, 제가 자꾸 결정을 미루면 상대는 자기가 덜 사랑받는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겁이 나면 겁이 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완벽하게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리면 그 순간은 평생 안 온다고요. 그 말이 제일 아팠습니다. 저는 늘 확신을 핑계로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 쪽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무조건 결혼하라고 등 떠미신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한테, 겁이 날 때마다 그걸 여자친구 탓이나 나이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안의 불안이라는 걸 알아채라고 하셨어요. 그 습관을 결혼 전에 한 번은 정면으로 봐야 나중에 안 흔들린다고요. 시기까지 짚어서, 올해 안에 그 대화를 그 사람과 솔직하게 나눠보라고 하셨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스드메가 어떻고 예식장이 어떻고 그런 걱정을 하는 줄 알았는데, 정작 제가 붙잡고 있던 건 내가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어요. 그 질문이 밤마다 저를 눌렀는데, 선생님은 그 자격을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겁이 날 때 그걸 솔직히 말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완벽한 남편이 되는 것보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고요. 완벽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되면 되는 거였어요. 그 한 줄이 저를 결혼 앞에서 도망치지 않게 붙잡아줬습니다. 그거면 충분한 거였어요. 정비 일이라는 게 결국 안 보이는 결함을 미리 찾아 사고를 막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제 마음의 결함은 못 보고 살았더라고요. 돌아보면 저는 사람 마음도 결함부터 찾으려 들었어요. 이 사람 어디가 안 맞나, 나중에 문제 되지 않을까부터 뜯어봤죠. 근데 진짜 뜯어봤어야 하는 건 상대가 아니라, 좋은 순간마다 겁부터 내고 뒷걸음질 치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여자친구한테는 아직 이 상담 받은 거 말 안 했는데, 조만간 손잡고 얘기해보려 합니다. 나이 차이로 고민하는 남자분들, 겁나는 게 정말 상대 때문인지 아니면 나 때문인지부터 한번 차분히 들여다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