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어요. 다그치지 않고요.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서른여섯이에요. 요즘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얼마 전에 긴 연애를 끝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다가가는 게 조심스러워졌어요. 이제 막 헤어진 사람한테 들이대는 게 맞나 싶어서요. 밤에 불 끄고 누우면, 이러다 그냥 좋은 사람 하나 또 흘려보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용히 차올랐어요. 전시 하나를 걸 때도 관람객의 동선을 몇 번씩 재는 사람이라, 사람 마음에 들어가는 타이밍도 자꾸 재고 또 쟀어요. 썸 상담을 받은 건, 이 조심스러움이 지나친 배려인지 아니면 필요한 신중함인지 판단이 안 서서였어요. 다가가지 못하는 게 겁이 많아서인지, 정말 때가 아니어서인지 저조차 헷갈렸거든요. 선생님이 '이 사람은 지금 새 관계를 시작할 마음의 자리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시기라, 지금 밀어붙이면 좋은 사람도 부담으로 남는다'고 하셨어요. 다만 당신에게 느끼는 호감 자체는 분명하니, 조급하게 관계를 정의하려 들지 말고 편한 사람으로 곁에 머무는 게 지금은 최선이라고요. 늦가을쯤 그 사람의 마음에 여백이 생기는 흐름이 온다고도 하셨어요. 제 조심스러움이 눈치가 아니라 정확한 감각이었다는 걸 확인받은 셈이죠. 지레 겁이 많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읽고 있었던 거예요. 그걸 확인받으니, 기다리는 일이 초조함이 아니라 배려로 바뀌더라고요. 조바심을 신중함으로 바꿔주는 진단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여졌어요. 놓칠까 봐 겁내던 마음도, 아직 문이 닫힌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가라앉았고요. 지금은 재촉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이 방향이 맞다는 확신이 있으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요. 좋은 그림일수록 서둘러 걸지 않는 법이니까요. 벽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걸면, 아무리 좋은 그림도 상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