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지 석 달이 지났어요. 이유도 제대로 못 들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정리하자더라고요. 마흔둘이면 이별에도 좀 무뎌질 줄 알았는데, 나이 든다고 덜 아픈 건 아니더라고요. 조경 일로 하루 종일 밖에서 몸을 쓰다가도, 저녁에 혼자 남으면 그 마지막 대화만 계속 되감기했어요. 가을 초입이라 다들 캠핑이니 단풍이니 떠나는 걸 보면서, 작년 이맘때 그 사람이랑 걷던 길들이 자꾸 겹쳐서 더 힘들었어요. 현장에서 조경수를 심다가도 물든 잎 하나가 툭 떨어지면, 작년 가을 그 사람이랑 낙엽 밟으며 걷던 공원길이 통째로 떠올랐어요. 나무를 심고 길을 내는 게 제 일인데, 정작 그 사람이랑 걷던 길 하나는 어떻게 지워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재회 상담을 신청한 것도 그 계절이 저를 떠민 것 같아요. 봄에 헤어졌으면 좀 나았을까, 하필 둘이 제일 자주 걷던 계절에 혼자가 되니 하루하루가 더 시렸어요. 한동안은 그 사람이 참 미웠어요. 이유도 안 주고 사람을 이렇게 세워두나 싶어서요. 하루 종일 몸을 쓰고 나면 저녁엔 곯아떨어질 법도 한데, 불을 끄고 누우면 눈이 말똥해지면서 그 마지막 대화가 처음부터 다시 재생됐어요. 내가 뭘 잘못했지, 어디서부터 틀어졌지, 답도 없는 질문을 밤새 되풀이했어요. 그런데 두 사람 기운을 견줘본 선생님이 '상대는 올해 들어 제 앞가림조차 벅찬 시기에 들어섰고, 그 무게에 눌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놓아버린 것'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말하지 않은 그 사람 사정을 짚으셨는데, 실제로 그 사람이 올봄 직장 문제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사람이 변했던 거예요. 미움이 스르르 풀린 건 그 대목에서였어요. 나를 안 사랑해서 버린 게 아니라, 자기 무게에 눌려 아무것도 못 쥐고 있었던 거라는 걸 아니까, 석 달간 저를 갉던 자책도 같이 가라앉았어요. 사실 그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저를 탓하고 있었어요. 내가 좀 더 살펴줬으면, 그 사람 힘든 걸 먼저 알아챘으면 달랐을까 하고요. 미워하던 마음이 실은 나를 탓하던 마음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그 사람이 제 앞가림도 못 하고 가라앉던 시기였다는 걸 알고 나니, 그건 제가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그리고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상대가 자기 문제를 어느 정도 추스르는 시기를 짚어주시면서 그전에는 연락을 삼가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막연히 매달리는 게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어요. 저는 그동안 기다림이랑 방치를 구분 못 하고 있었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견디는 게 다 지는 거라고만 여겼는데, 어떤 기다림은 준비라는 걸 이제 알아요. 내용은 정말 도움이 됐는데, 딱 하나 불편했던 건 결과를 다시 보려 할 때 재열람 링크를 찾는 게 은근히 어려웠어요. 메일함을 한참 뒤져서야 겨우 열었거든요. 이 부분만 좀 더 쉽게 안내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별 네 개 드려요. 내용 자체는 다섯 개도 아깝지 않은데, 다시 찾아 읽기가 불편했던 그 점 하나가 끝까지 걸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