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왜 나는 연애만 하면 부모님 앞에서 하던 걸 상대한테 그대로 반복할까. 이 질문 하나를 몇 년째 마음에 품고 있다가, 큰맘 먹고 프리미엄을 신청했어요. 논문에 치여 사는 대학원생이라 정작 제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 리포트가 그 일을 대신 해줬어요. 밤늦게 실험실에 혼자 남아 데이터를 돌리다가도, 문득 이러다 나는 아무하고도 제대로 못 만나는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공포가 훅 밀려오던 날이 많았거든요. 그 막연한 두려움의 정체가 늘 궁금했어요. 선생님이 제 구조를 보시더니, 당신은 어릴 때 인정받으려고 늘 한발 앞서 눈치를 보던 사람이라, 연애에서도 상대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다 맞춰주고 나중에 혼자 지쳐 나가떨어진다고 짚으셨어요. 저는 부모님 얘긴 신청서에 한 줄도 안 적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아셨는지 한참 화면만 멍하니 봤어요.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굳어진 그 태도가 지금 제 연애의 어떤 장면에서 튀어나오는지를, 상황 하나하나로 풀어주신 대목에서 오래 멈춰 있었어요. 상대가 조금만 서운한 기색을 보여도 제가 먼저 사과하고 먼저 맞추던 그 순간들이, 사실은 어릴 적 그 집 거실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더라고요. 어릴 때 저는 엄마 표정이 조금만 굳어도 내가 뭘 잘못했나부터 살피던 아이였어요. 그 버릇이 이십 년을 건너뛰어 연애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는 걸, 이 리포트를 읽고서야 알았어요. 백 페이지가 넘는데 빈말로 채운 데가 한 군데도 없었어요. 읽는 내내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남한테 처음 이해받는 게 아니라, 나조차 몰랐던 나를 처음 소개받는 느낌이랄까요. 논문 각주 하나에는 그렇게 예민하면서 정작 제 마음의 출처는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거든요. 딱 하나 아쉬운 건 기다림이었어요. 분량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마음이 급한 사람한테는 도착할 때까지가 참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것 하나만 빼면 값어치는 충분하고도 남았어요. 4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