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마흔에 작사가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밤이 돼서야 가사를 씁니다. 그날도 노래 한 곡의 도입부를 붙들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머릿속은 가사가 아니라 딴 사람 생각으로 가 있었습니다. 두 살 어린 사람과의 애매한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분명한데, 상대의 신호가 도무지 읽히지 않았습니다. 이 나이에 감정 하나에 이렇게 휘둘리는 제 자신이 낯설고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낮의 일을 해내고 사람들과 웃었지만, 집에 돌아와 빈 악보 파일을 열면 커서만 깜빡였습니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조용히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사실 마흔쯤 되면 이런 감정은 정리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설렘도 조바심도 이십 대에 다 두고 온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스무 살에 좋아하던 마음이나 마흔에 좋아하는 마음이나, 상대의 답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뒤집어 두었다 다시 뒤집는 밤의 온도는 똑같았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제는 그 마음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좋은 말로 위로나 해주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위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제 구조를 보시더니, 당신은 감정을 말이 아니라 글로 정리하는 사람이라 표현이 늘 한 박자 늦고, 상대는 그 침묵을 무관심으로 오해하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가사를 쓰는 사람이라는 걸 어디에도 적은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어서 상대의 기운도 짚어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확신이 서기 전엔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않는 쪽이라, 제가 계속 글로만 마음을 삭이고 있으면 두 사람 다 나란히 평행선만 긋게 된다고요. 먼저 표현하되 길게 말고 짧게, 상대에게 결정을 재촉하지는 말라는 방향까지 담담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저는 여태 표현을 안 한 게 신중함인 줄 알았는데, 상대에겐 그냥 무관심으로 읽히고 있었다는 대목에서 한참 말을 잃었습니다. 글 뒤에 숨어 있던 세월이 그제야 부끄러웠습니다. 상담을 받고 며칠 뒤, 정말 오랜만에 가사 한 소절이 막힘없이 써졌습니다. 딴 데 가 있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니 문장도 같이 돌아온 모양입니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어딘가에 붙들려 있으면, 결국 글도 그만큼 붙들려 나오질 않는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날 쓴 소절이 대단한 명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커서가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 그 사실 하나가 저를 조금 살렸습니다. 표현을 미루던 사람이 종이 위에서라도 먼저 한 발 내디딘 셈이니까요. 읽고 나서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제 문제를 이렇게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요약당해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위로는 한마디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위로가 됐습니다. 아마 정확하게 이해받는 것 자체가 어떤 위로보다 크기 때문일 겁니다. 감정을 크게 흔들어 놓는 상담이 아니라, 흐트러진 것을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는 상담이었습니다. 저한테는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오래 미뤄둔 숙제 하나를, 소리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끝낸 기분입니다. 별점은 망설임 없이 다섯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