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책장 사이를 하루 종일 혼자 오가는 게 제 일이에요. 손님보다 책이 더 많은 날도 있는 작은 독립서점을 꾸리거든요. 온종일 남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지면서도, 정작 제 이야기는 늘 혼자 삼키는 사람이었어요. 얼마 전에 받은 재회 리포트에서, 선생님이 그 사람과 연락이 다시 닿을 시기를 짚어주셨어요. 설마 했는데 진짜로 그맘때 그 사람한테서 짧은 메시지가 왔어요. 잘 지내냐는 딱 한 줄이었는데, 그 한 줄을 계산대 앞에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몰라요. 사실 그 시기가 다가올수록 밥이 잘 안 넘어갔어요. 손님이 뜸한 오후엔 서가를 정리하다 말고 자꾸 휴대폰만 뒤집었다 다시 엎기를 반복했고요. 올까, 안 올까. 그 며칠은 책등에 붙은 먼지만 하염없이 닦았어요. 그런데 정작 연락이 오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반가운데 무슨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예요. 답장 창을 열었다 닫았다만 며칠을 했어요. 커서만 깜빡이는 화면을 앞에 두고 손끝이 차갑게 식던 밤들이요. 한 글자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무서웠던 건,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 고르면 겨우 열린 이 문이 다시 닫혀버릴 것 같아서였어요. 그래서 추가 질문을 신청했어요. 1만원짜리라 짧고 형식적인 답이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것만 정확히 주셨어요. '지금은 관계를 되돌리려는 티를 내지 말고, 이 사람이 편하게 말 걸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되세요'라고요. 그러면서 무거운 얘기는 다 접어두고, 이 사람이 예전에 좋아하던 사소한 화제 하나부터 툭 꺼내라고 하셨어요. 별것 아닌 것 같은 조언인데, 며칠을 헤매던 저한테는 그게 캄캄한 데서 겨우 찾은 손잡이 같았어요. 그 한 줄 덕분에 며칠을 붙잡고 있던 답장을 드디어 보냈어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제가 그 며칠 내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대단한 재회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끊겼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는 것만으로 목이 뻐근하게 벅찼어요. 그리고 정말 그 사소한 화제 하나로 시작했더니, 대화가 어색하지 않게 술술 이어졌어요. 그날 저녁엔 서점 문을 닫고도 한참을 계산대에 그냥 앉아 있었어요. 오래 닫아둔 방에 다시 불이 하나 켜진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짧은 답 하나가 이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앞으로 이게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사람과 같은 문장 안에 다시 있다는 게 좋아요. 조급해하지 않고, 이 속도 그대로 천천히 가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