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회계사로 일하는 서른넷이에요. 일에 몰입하면 연애가 뒷전이 되고, 연애에 마음을 쏟으면 일이 흔들리고. 두 개를 동시에 잘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늘 하나를 포기하며 살았어요. 결산이 몰리는 철엔 연애가, 연애가 뜨거울 땐 장부가 뒷전이 되는 식이었어요. 마지막 연애도 결산 시즌에 제가 몇 주를 잠수 타는 바람에 조용히 멀어졌어요. 그 사람이 자주 앉던 카페 자리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저릿했지만, 이게 제 그릇의 문제인지 성향의 문제인지부터 알고 싶어서 프리미엄 심층 분석을 신청했어요. 숫자로 검증 안 되는 건 잘 안 믿는 사람인데, 오죽하면 이걸 신청했겠어요. 매번 하나를 죄인 취급하며 사는 게 지쳤거든요. 선생님이 리포트에서 '당신은 한 번에 하나에만 온 힘을 쏟는 몰입형이라, 두 개를 동시에 굴리려 하면 스스로 죄책감에 짓눌린다'고 하셨어요. 일과 사랑을 저울에 올려 하나를 죄인 취급하는 제 오랜 습관을 정확히 짚으셨어요. 나눠서 못 하는 게 결함이 아니라, 몰입의 방향을 시기별로 배분하면 된다는 방향까지 주셨고요. 동시에 잘하려 애쓰다 둘 다 놓치느니, 시기를 나눠 번갈아 쏟으라는 거였어요. 결산철엔 일에, 한숨 돌리는 철엔 사람에 마음을 몰아주면 된다는 거예요. 늘 저울 양쪽을 억지로 맞추려다 둘 다 흘렸던 저한테는, 발상 자체가 새로웠어요. 덕분에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좀 놓여났어요. 몰입하는 동안 다른 쪽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고요. 다만 숫자에 익숙한 저한테도 몇몇 대목은 문장이 어려워서 곱씹어 읽어야 했어요. 개념을 조금만 더 풀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에 4점 드려요. 그래도 제 패턴의 정체를 알게 된 건 큰 소득이에요. 하나에 몰입하는 게 결함이 아니라 제 방식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어느 쪽에도 죄인처럼 굴지 않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