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헤어진 지 석 달이 지났어요. 마흔둘이라는 나이에 이별을 겪으니까, 스물몇에 겪던 것과는 무게가 완전히 달랐어요. 그때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통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이게 내 마지막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 커지더라고요. 그 사람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며 저와 거리를 뒀어요. 지금은 연애가 사치라고, 자기 앞길부터 세워야 한다고요. 머리로는 이해가 됐어요. 그런데 마음은 자꾸 되물었어요. 정말 시험 때문일까, 아니면 나한테서 마음이 떠난 걸 그렇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걸까. 이 질문이 저를 갉아먹었어요. 아마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도, 상대가 이유를 대며 떠났을 때 그게 진짜 이유인지 핑계인지 몰라서 밤을 지새운 분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 말을 백 번 곱씹어도 답이 안 나오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재회 상담을 신청하면서 제일 알고 싶었던 것도 그거였어요. 이 이별의 진짜 이유요. 선생님은 두 사람 사주를 같이 보시고는, 그 사람이 지금 인생에서 무언가 하나를 세우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시기에 들어가 있다고 하셨어요. 원래도 여러 가지를 동시에 품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만 붙잡는 기질인데, 지금은 그 하나가 시험이 된 거라고요. '이 사람에게 지금 당신은 밀려난 게 아니라, 잠시 대기열에 있는 거예요.' 이 표현이 오래 남았어요. 저는 이 말이 그냥 위로려니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어서, 이 사람이 평소에 애정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연락이 확 줄면서 혼자 파고드는 성향이지 않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신청서에 한 글자도 안 쓴 부분이었어요. 저희 관계에서 제일 답답했던 게 딱 그거였거든요. 힘들면 말을 안 하고 사라지는 거요.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 순간부터는 나머지 내용을 다르게 읽게 되더라고요. 이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해서 떠난 게 아니라, 원래 자기 그릇이 좁아서 지금은 두 가지를 못 담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원망이 조금씩 자리를 옮겼어요. 무엇보다, 이 밤을 나 혼자만의 착각으로 새우고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게 컸어요. 리포트에는 언제쯤 그 사람 마음에 다시 여유 칸이 생기는지, 그전까지 제가 어떤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지도 적혀 있었어요. 이 사람이 시험이 끝나갈 무렵 오히려 마음이 헐거워지면서 지난 인연을 돌아보는 시기가 온다고요. 그전까진 아무리 잘해줘도 튕겨 나올 테니, 존재감만 옅게 남기고 물러나 있으라고 했어요.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닌, 그 애매한 거리를 어떻게 지키는지가 저한테는 제일 어려웠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서 좋았어요. 한 가지 걸린 건 가격이에요. 5만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이런 상담에 돈을 쓰는 게 스스로 좀 머쓱했어요. 마흔이 넘어서 사람 마음 하나 확인하겠다고 돈을 쓰는 게 유난인가 싶어서, 신청 버튼을 누르기까지가 오래 걸렸거든요. 근데 막상 잠 못 든 밤들을 돈으로 환산해 보면, 그 며칠 값도 안 되는 거였어요. 그걸 다 읽고 나서야 알았어요. 이 리포트를 읽기 전과 후로 제 밤이 좀 달라졌어요. 전에는 잠자리에 누우면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을 하나하나 되감으며, 저 문장의 진짜 뜻이 뭘까 오래 해석했거든요. 문자 하나를 열 번씩 다시 읽고, 안 쓰던 말투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요. 마흔이 넘어 이러고 있는 제가 초라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원래 두 가지를 한꺼번에 못 담는 그릇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그 문장들을 더는 해석하지 않게 됐어요. 그 사람 말속에 숨은 거절을 찾느라 저를 갉아먹던 걸 멈춘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재회보다 먼저 온 회복이었어요. 무엇보다, 이 긴 밤을 저 혼자 이상해서 보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게 컸고요. 그리고 하나 더 마음에 남은 건, 이 상담이 그 사람을 어떻게 되돌릴지가 아니라 제가 저를 어떻게 지킬지를 먼저 알려줬다는 거예요. 매달리라고도, 잊으라고도 하지 않고, 그 중간에서 저를 잃지 않는 법을 짚어주더라고요. 아직 그 사람한테 연락은 안 했어요. 선생님이 말한 그 시기가 아직 안 왔거든요.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게 됐어요. 그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먼저 챙기게 된 건 저 자신이었어요. 확인받지 못한 마음에 매달려 저를 소진하는 대신, 그 시기가 올 때까지 제 하루를 단단히 세워두기로 했거든요. 그게 매달림도 포기도 아닌 세 번째 길이라는 걸, 마흔이 넘어서야 배웠어요. 돌아보면 저를 갉아먹던 건 이별 자체가 아니라, 그 이유를 몰라 헤매던 시간이었어요. 이유를 아니까 그 밤들이 짧아졌고요. 마흔이 넘어서 배운 게 있다면, 답을 아는 것만으로도 밤이 조금은 짧아진다는 거예요. 4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