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연구실에서 데이터만 붙잡고 사는 사람이에요. 세상 어지간한 건 변수로 쪼개면 설명이 되는데, 딱 하나 논리로 안 풀리는 게 제 연애였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에 벽을 세우는 유형이었고, 그게 우연이라기엔 표본이 너무 반복됐어요. 여름휴가를 혼자 보내면서, 이 패턴만큼은 한 번 제대로 분석하고 넘어가야겠다 싶어서 프리미엄으로 신청했어요. 100페이지가 넘는 리포트를 논문 정독하듯이 밑줄 그어가며 읽었어요. 선생님이 제 반복의 뿌리를 짚으셨는데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안전거리를 두는 상대를 골라서 상처를 미리 관리하려 한다'고요. 저는 그동안 벽 있는 사람한테 자꾸 걸려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가 안전한 거리를 원해서 그런 사람을 골라온 거였어요. 당하는 게 아니라 고르는 거였다는 말이죠. 읽으면서 제일 서늘했던 건, 제가 연애를 실험처럼 다뤄왔다는 걸 짚은 대목이었어요. 상처받을 변수를 미리 줄이려고 애초에 마음을 덜 줄 상대를 골라놓고는, 왜 늘 외롭냐고 데이터를 탓하고 있었던 거죠.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다가 정작 사랑을 통째로 놓치고 있었어요. 제가 고른 거라는 그 한 문장이 오래 남았어요. 피해자인 줄 알았던 자리가 사실은 제 선택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아프긴 했지만, 그래야 다음 선택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방향을 바꿔준 리포트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