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그래, 그럼 그만하자.' 홧김에 뱉은 그 한마디가 진짜 이별이 될 줄은 몰랐어요. 하필 그 주가 종합소득세 신고 마감이었어요. 세무사무소에서 일하는데 마감 주엔 제가 사람이 아니에요.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사소한 걸로 남자친구랑 부딪히다가, 저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어요. 그 사람은 알겠다고 짧게 답하고는 정말로 연락을 끊었어요. 홧김이었다고, 그런 뜻 아니었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친 채로요. 그날부터 밤마다 카톡 목록만 열었다 닫았다 했어요.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통화 버튼 앞에서 지우고, 다시 눌렀다가 지우고. 그 손끝의 망설임, 겪어본 사람은 알 거예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자존심 때문에 목구멍에서 안 넘어가더라고요. 먼저 연락할 용기는 안 나고, 그렇다고 이대로 끝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거라도 알고 싶어서 상담을 신청했어요. 선생님이 '두 분 다 지금 화가 나 있는 게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서로 먼저 손 내밀기를 기다리는 교착 상태'라고 하셨어요. 마음은 하나도 안 끝났는데 다시 다가갈 명분이 없어서 못 오는 거라고, 그러니 그 명분을 네가 만들어주라고요. 마감 서류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머릿속 한 칸은 계속 그 사람한테 가 있었어요. 숫자를 세 번씩 다시 두드리는데, 손은 계산기를 두드려도 눈은 자꾸 엎어둔 핸드폰으로 갔어요.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보고 싶은데, 그 마음을 자존심이 계속 밟고 서 있더라고요. 제가 미워서 끊은 게 아니라 명분이 없어서 못 오는 거라는 그 말에, 그 사람을 향하던 원망이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어요. 미워할 일이 아니라 손 내밀 일이었구나 싶었어요. 마감 끝난 날, 그동안 내가 예민해서 못되게 굴었다고 미안하다고, 딱 그 한 줄만 보냈어요. 답장이 3분 만에 왔어요. 저도 미안했다고. 지금 다시 만나요 ㅋㅋ 홧김에 던진 한마디가 이렇게 커질 줄 알았으면 그때 딱 3초만 참을걸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