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선배, 이거 선배 생각나서 샀어요. 후배가 툭 건넨 그 한마디가 며칠을 머릿속에서 안 떠났어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 언젠가부터 이 친구가 저를 대하는 결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았거든요.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냥 편한 회사 후배였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이 친구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니까, 제가 더 혼란스러웠어요. 이게 만약 저만의 착각이면 삼 년 쌓은 편한 사이까지 다 어색해질까 봐서요. QA로 일하면서 버그는 그렇게 잘 잡는데, 사람 마음은 왜 이렇게 재현이 안 되는지 ㅋㅋ 재현 안 되는 버그가 제일 무서운 법인데 말이에요. 선생님이 그 친구 기운을 보시더니, 마음이 생기면 표현보다 먼저 상대 주변을 살피는 쪽이라, 티 나는 고백은 늦되 챙기는 행동이 먼저 앞선다고 하셨어요. 듣고 보니 요새 이 친구가 제 커피 취향이며 야근 스케줄까지 다 꿰고 있더라고요. 그냥 우연이겠거니 넘겼던 것들이 사실은 다 신호였던 거예요. 그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놓였어요. 혼자 몇 주를 끙끙 앓으면서 나만 이러는 건가 싶었는데, 적어도 내가 느낀 게 근거 없는 착각은 아니었구나 하고요. 나 혼자 짝사랑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확인 하나가, 생각보다 사람을 크게 안심시키더라고요. 사실 저는 확인 안 되는 상황을 제일 못 견디는 사람이에요. 버그도 재현이 돼야 고치는데, 이 마음은 재현도 안 되고 로그도 안 남으니까 며칠을 혼자 최악의 경우만 상상했거든요. 그런데 적어도 내 감지 하나는 오작동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니, 그제야 어깨에 힘이 풀렸어요. 다만 상대 쪽 분석이 조금만 더 깊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어요. 저에 대한 해석은 촘촘하고 길었는데, 그 친구 부분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거든요. 그 친구 속을 조금 더 들여다봐 줬으면 싶었어요. 그래도 방향은 확실히 잡혀서 4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