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합니다. 서른아홉이고요. 요즘 친구들 청첩장이 우수수 날아오는데, 정작 저는 소개받은 사람 하나 두고 몇 주째 갈피를 못 잡고 있었어요 ㅋㅋ 친구가 소개해 준 그녀인데, 도무지 속을 모르겠더라고요. 만나면 분위기도 좋고 대화도 잘 통하는데, 헤어지고 나면 연락이 뚝 끊겨요. 그러다 제가 좀 식으려고 하면 또 절묘하게 연락이 와요. 이게 밀당인지, 아니면 그냥 저한테 별 관심이 없는 건지.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 이런 걸로 머리 싸매고 있는 게 스스로도 우습더라고요. 친구 결혼식장에 혼자 앉아 축의금을 내면서,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연애 하나 매끄럽게 못 하나 싶어 씁쓸했어요. 지난 연애들도 다 제가 재고 눈치 보다 타이밍을 놓쳐 끝났던 게 겹쳐 보였고요. 그래서 썸 상담이라는 걸 난생처음 신청해 봤어요. 다 큰 남자가 이런 거 보는 게 좀 멋쩍긴 했는데, 궁금해 죽겠는 걸 어떡해요 ㅋㅋ 선생님이 그녀 성향을 보시더니 '이 사람은 일부러 밀당하는 게 아니라, 관심이 있어도 먼저 다가가는 데 서툴러서 상대가 식을 때쯤에야 겨우 용기를 내는 구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뚝 끊기는 연락이 무관심이 아니라 소심함이었던 거예요. 듣고 보니 그녀가 늘 연락은 늦어도 만나면 제 얘기를 하나도 안 빼놓고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이런 유형한테는 제가 밀당으로 맞불을 놓으면 둘 다 눈치만 보다 끝난다고, 제가 조금 더 명확하게 호감을 표현해 주는 게 이 관계를 푸는 열쇠라고 하셨어요. 애매하게 재지 말고 다음 약속을 확실하게 잡으라는 거죠. 늘 재다가 놓쳐 온 제 버릇을 정확히 겨냥한 말이라 뜨끔했어요.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신청할 때 작성하는 질문 항목이 꽤 많아서 다 적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어요. 퇴근하고 피곤한 상태로 채우려니 살짝 벅차더라고요. 뭐 그만큼 꼼꼼히 봐주시려는 거겠거니 했어요. 돌아보면 제 연애는 늘 재다가 놓치는 걸로 끝났어요.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실해지기 전엔 절대 먼저 안 움직였거든요. 그러다 상대가 지쳐 떠나고 나면, 그제야 아 그때 그럴걸 하고 후회하는 거죠.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그 버릇 그대로였어요. 근데 이번 상대는 저보다 더 서툰 사람이라, 저까지 재고 있으면 둘 다 눈치만 보다 끝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서툰 사람 앞에서 제가 먼저 명확해져야 한다는 그 말이, 늘 뒤로 빼던 제 등을 딱 떠밀어 줬어요. 커피 취향까지 외우면서 연락은 늦는 그녀가, 알고 보니 밀당의 고수가 아니라 그냥 저만큼 겁이 많은 사람이었던 거예요 ㅋㅋ 친구 결혼식장에 혼자 앉아 축의금 봉투에 이름을 적다가,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연애 하나 매끄럽게 못 하나 싶어 씁쓸했어요. 근데 그게 제가 못나서가 아니라, 늘 확신부터 받고 움직이려는 버릇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 알아요. 서툰 사람 앞에서는 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걸요 ㅋㅋ 그 한 걸음이 그렇게 어려웠는데, 막상 떼고 나니 별것도 아니더라고요. 아무튼 저는 그녀한테 이번 주말 약속을 먼저, 확실하게 잡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적어도 눈치만 보던 상태에선 벗어났어요. 저처럼 다 큰 어른이 연애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게 부끄러운 분들,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더라고요 ㅋㅋ 4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