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쉰 살, 결혼 25년 차입니다. 큰아들이 작년에 결혼했고, 둘째 딸이 대학교 3학년이에요. 아이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아내와 둘만 남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그 시간이 두렵습니다. 25년 동안 아이들이 채워주던 빈자리가 드러나니까, 이 사람과 대체 뭘 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하나 하는 공허함이 밀려왔어요. 솔직하게 고백하면, 결혼 생활의 대부분은 의무감으로 유지했어요.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라야 하니까, 대출을 같이 갚아야 하니까, 주변 시선이 있으니까. 사랑이 있었던 건 신혼 초 5년 정도였고, 나머지 20년은 관성이었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자리에서 밥 먹고 같은 패턴으로 하루를 반복하는. 감정 없이 돌아가는 시계 같은 생활. 아내도 아마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거예요. 우리 세대가 원래 그렇잖아요. 참고 사는 게 미덕이었으니까. 주말이면 아내는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저는 서재에서 유튜브를 봐요. 같은 집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아요. 밥 먹을 때 마주 앉아있는데 시계 소리가 들려요. 똑딱, 똑딱. 그 소리만 들리는 식탁. 숟가락 소리와 시계 소리. 그게 우리 부부의 일상이에요. 가끔 아내 얼굴을 보면 이 사람도 지쳐있다는 게 느껴져요. 입가에 잡힌 주름, 생기 없는 눈, 웃어야 할 타이밍에 웃지 않는 표정. 나도 아마 같은 얼굴일 거예요. 그런데 큰아들 결혼식에서 무언가가 무너졌어요. 웨딩홀 단상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을 봤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의 눈에서 어떻게 빛나는지 까먹고 있었는데 그날 다시 봤어요. 옆에 앉아있는 아내를 봤어요. 축가가 흐르는데 아내는 핸드폰으로 하객 관리 카톡을 보내고 있었어요. 25년 같이 산 사람인데 결혼식이라는 감정적인 순간에도 실무만 처리하고 있는 이 사람. 내가 이 사람 옆에서 느끼는 건 사랑이 아니라 적막이었어요. 아들이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가락의 결혼반지를 돌렸어요. 이 반지가 의미하는 게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회사 동기 모임에서 친구 하나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쉰에 이혼하고 새 사람을 만나서 지금 행복하다고. 눈이 반짝거리면서 여행 다니는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 표정에서 살아있음을 봤어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히고 나서부터 이혼이라는 단어가 매일 떠올랐어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점심 먹으면서,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기 전에. 이 문을 열면 또 같은 적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 손잡이를 잡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무거웠어요.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25년을 함께한 사람인데, 아이들 엄마인데,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옆에 있어준 사람인데. 이혼을 생각하다니. 아내가 새벽에 저 몰래 다림질해주던 와이셔츠, 아플 때 죽 끓여서 머리맡에 놓아주던 손,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본인 옷 한 벌 안 사면서 참았던 그 사람한테 이혼을 생각하는 내가 나쁜 놈인 건 확실해요. 직장 회식에서 술을 마시면서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울었어요. 쉰 살 남자가 회식 자리 화장실에서 우는 게 추하다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봤어요. 언제 이렇게 늙었지. 이 얼굴로 새 출발이 가능하긴 한 건가. 거울 속의 남자가 낯설었어요. 아이들한테도 말 못 해요. 큰아들은 이제 막 결혼해서 행복한데 아버지가 이혼 고민이라고 하면 충격받을 거고, 둘째 딸은 아직 학생인데 부모가 갈라진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이 고민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오히려 가장 말 못 하는 종류의 고민이에요. 그래서 밤마다 서재에서 혼자 술을 마시면서 창밖을 봤어요. 아파트 불빛이 하나 둘 꺼지는 걸 보면서 저 집들 안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어요. 상담을 신청한 건 이 감정을 혼자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어서였어요. 이혼을 해야 하는지, 남아야 하는지, 아니면 이 감정 자체가 나이 오십의 허무감인 건지. 선생님이 제 사주를 분석하시면서 올해 '중년 전환기'의 에너지가 극도로 강하게 들어와있다고 하셨어요. 이건 남자 갱년기와도 맥이 닿는 건데, 지금까지 해온 인생을 총결산하면서 '이게 과연 내가 원한 삶인가'를 근본적으로 의문하는 시기래요. 문제는 이 공허함의 출구를 이혼에서 찾으면 실패한다는 거예요. 새 사람을 만나도, 새로운 환경에 가도, 결국 나 자신이 채워지지 않으면 같은 공허함이 돌아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아내의 사주를 보시면서 이 사람도 저와 비슷한 공허함을 안고 있다고 하셨어요. 다만 표현 방식이 다른 거래요. 저는 이혼을 생각하고, 아내는 실무에 파묻히는 거. 둘 다 감정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다른 방향으로 도피하고 있다고. 아내가 아들 결혼식에서도 카톡을 보고 있었던 건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느끼면 무너질까 봐 일부러 바쁜 척한 거일 수 있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에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어요. 한 번도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선생님이 제안하신 건 이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시작하라'는 거였어요. 젊은 시절 포기했던 것들. 배우고 싶었던 것, 가보고 싶었던 곳, 해보고 싶었던 것. 이걸 하나씩 시작하면서 아내한테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보라고요. 두 사람이 각자의 공허함을 함께 채워갈 수 있다면 이 결혼에서 두 번째 봄이 올 수 있다고. 그리고 핵심적인 말씀을 하나 더 하셨어요. 이혼 친구의 행복은 그 사람의 이야기이지 제 이야기가 아니라고. 같은 선택을 해도 결과는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다고. 친구는 새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졌지만, 제 사주 구조에서는 새로운 인연보다 기존 인연을 재구축하는 쪽이 훨씬 안정적이고 깊은 행복을 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상담 받고 나서 20년 만에 기타를 다시 꺼냈어요. 대학교 때 밴드에서 치던 기타예요. 다락에서 먼지를 털고 녹슨 줄을 바꾸고 코드를 잡았어요. 손끝이 아프면서도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서툰 코드를 치는데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F 코드에서 막히면서도 웃었어요. 20년 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싶으면서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이 올라왔어요.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의외로 좋아하더라고요. 예전에 제가 기타 치는 거 좋아했다면서 눈이 반짝거렸어요. 그 눈빛. 결혼식 날 봤던 눈빛이 거기에 있었어요. "학교 축제 때 기타 치던 거 기억나? 그때 내가 반한 거야" 라는 말을 듣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요. 25년 전에 아내가 왜 나를 좋아하게 됐는지, 그 시작을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동안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내가 "나도 뭐 배워볼까, 요리 교실 같은 거" 하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25년 동안 서로한테 무관심했던 우리가 처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직 이혼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20년 짓눌린 공허함이 기타 하나로 해결되진 않겠죠. 하지만 적어도 성급한 결정은 내리지 않기로 했어요. 지난 주말에 아내와 같이 동네 공원을 산책했어요. 별것 아닌 일인데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이 상담 덕분에 문제의 본질이 아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걸 볼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기타를 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