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보안 엔지니어로 일해요. 하루 종일 남이 뚫으려는 틈을 막는 게 일이라, 웬만한 말은 일단 의심하고 뜯어보는 게 몸에 뱄어요. 로그 한 줄에도 근거를 대라고 후배들을 달달 볶는 사람이 저예요. 그런 제가 사주 상담을 신청했다고 하면 팀 사람들이 다 웃을 거예요. 사실 저도 결제 버튼 위에 손가락을 한참 올려두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몇 번을 껐다 켰어요. 제 사정이 좀 우스웠어요. 두 사람이 동시에 눈에 밟히는데, 양다리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쪽으로도 마음을 못 정하겠는 거예요. 한 명은 옆에 있으면 어깨에 들어간 힘이 스르르 풀리고, 한 명은 이름만 떠도 손끝이 저릿해요. 편한 사람은 같이 있으면 하품이 나올 만큼 안온하고, 저릿한 사람은 카톡 한 줄에 하루 종일 폰을 뒤집었다 엎었다 해요. 이걸 친구한테 털어놓기도 창피해서, 퇴근하면 불도 안 켜고 현관 앞에 가방을 멘 채로 한참 서 있던 날이 많았어요. 남들한텐 티도 안 냈어요.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회의에 들어가 취약점 브리핑을 하고, 자리에 앉아선 두 이름 사이에서 저울질만 했어요. 회의 자료를 띄워놓고도 머릿속에선 두 사람 카톡 프로필을 번갈아 열었다 닫았다 했어요.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퇴근하면 진이 다 빠져서, 정작 마음 정하는 일은 또 내일로 미뤄졌고요. 아무렇지 않은 척이 제일 익숙한 사람이 저라, 정작 저는 제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안 들여다봤더라고요. 남의 시스템 빈틈은 그렇게 잘 찾으면서, 제 마음의 빈칸은 몇 달째 방치해 둔 거죠. 좋은 말만 잔뜩 늘어놓고 알아서 판단하라 할 줄 알았어요. 그랬으면 4점도 안 줬겠죠. 그런데 선생님이 제 사주를 보시더니 '지금 당신은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라, 두 관계에서 각각 다른 허기를 채우고 있는 것'이라고 짚으시더라고요. 한쪽에선 안정을, 한쪽에선 나를 알아봐 주는 눈빛을 얻고 있는 거라고요. 그 말에 목이 잠깐 뻐근했어요. 정작 제가 저한테 못 물어본 걸 대신 물어봐 주신 것 같았거든요. 저는 사람이 고르기 싫었던 게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포기하면 그 허기 하나가 다시 텅 비는 게 무서웠던 거예요. 둘 중 누가 저랑 더 길게 갈 수 있는 구조인지도 풀어주셨는데, 그냥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제가 관계에서 늘 반복하는 버릇이랑 엮여 있어서 반박을 못 하겠더라고요. 저는 편한 사람 옆에선 슬며시 지루해하고, 설레는 사람 앞에선 지레 겁을 내며 도망칠 구실부터 찾는대요. 그러니 늘 이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 한 거였어요. 가을이 깊어 초겨울로 넘어갈 즈음 마음이 한쪽으로 기운다고 하셨는데, 그 대목에서 단풍 보러 가자 약속만 해놓고 못 간 그 사람 얼굴이 왜 먼저 떠올랐는지 몰라요. 다만 아쉬운 건, 제 분석에 비해 상대 두 사람 쪽 이야기가 좀 얇았어요. 저는 제 마음보다 저 사람들이 절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거든요. 제 쪽 구조는 몇 번을 다시 읽을 만큼 촘촘한데, 상대 파트는 한두 장으로 끝나서 아쉬웠어요. 그 부분이 더 두툼했으면 망설임 없이 5점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몇 주째 제자리만 맴돌던 마음이 방향 하나는 잡은 셈이라, 이 값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아직 누구 하나를 고른 것도 아니고, 여전히 밤이면 두 이름 사이에서 서성여요. 고르지 못한 채 여기 서 있는 게 여전히 답답하긴 해요. 그래도 이 답답함이 어디서 오는지 이름을 알게 된 것만으로, 밤이 조금은 견딜 만해졌어요. 남 의심하는 게 직업인 제가 이렇게 진지하게 후기를 적고 있는 게 저도 좀 웃기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