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읽씹이 3주째 이어지던 어느 날, 저는 그냥 이게 끝이구나 하고 알았어요. 무슨 대단한 이별 통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답장 간격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그러다 제 메시지 옆에 숫자 1이 며칠씩 지워지지 않게 됐어요. 은행에서 일하다 보면 숫자로 뭔가를 판단하는 게 몸에 뱄는데, 그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잔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어요. 창구에서 하루 종일 웃으며 손님을 응대하다가도, 잠깐 화면에 뜬 그 1을 떠올리면 명치가 뻐근했어요. 마흔둘이나 돼서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에 하루가 통째로 흔들리는 게 우습기도 했고요. 그 3주 동안 저는 겉으로는 멀쩡했어요. 매일 정장을 다려 입고, 창구에 앉아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고, 점심엔 동료들이랑 웃으며 밥을 먹었어요. 아무도 제가 밤마다 그 숫자 1을 들여다보며 잠을 못 이룬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마흔이 넘으면 이별에도 요령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나이만 먹었지 마음은 스무 살 때랑 똑같이 서툴렀어요. 제일 견디기 힘든 건 화를 낼 상대조차 없다는 거였어요.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붙잡든 원망하든 했을 텐데, 이건 그냥 소리 없이 밀려 나간 거라 어디다 마음을 둬야 할지 몰랐어요. 재회 상담을 신청한 건, 화를 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어정쩡한 끝맺음의 정체가 궁금해서였어요. 통보라도 받았으면 차라리 정리가 됐을 텐데, 이건 그냥 흐지부지 사라진 거라 마음 둘 데가 없었거든요. 결과지 첫 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이 관계는 싸워서 깨진 게 아니라, 두 사람 다 표현에 서툰 기질이라 서로 먼저 손 내미는 걸 기다리다 어긋난 거라고요. '이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둘 다 자존심이라는 벽 앞에서 멈춰버린 이별이에요.' 그 말이 정확했어요. 그 사람도 저처럼 먼저 연락하는 걸 죽기보다 어려워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놀란 건, 선생님이 이 사람은 자기가 먼저 연락을 못 하는 대신, 상대가 아주 가벼운 물꼬만 터주면 못 이기는 척 반응하는 유형이라고 짚어주신 거예요. 무겁게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하고, 별일 아닌 척 툭 건네면 오히려 반가워하는 사람이라고요. 그 말대로 얼마 전에 정말 별거 아닌 안부를 하나 보냈어요. 예전 같으면 자존심 때문에 절대 못 했을 일인데요. 그랬더니 그 숫자 1이 금방 사라지고, 오랜만에 대화가 이어졌어요. 아직 다시 만나자는 얘기까진 아니지만, 3주 동안 얼어 있던 게 조금 녹은 것 같아요. 그 문자 한 통을 보내기까지, 저는 스무 번쯤 썼다 지웠어요. 너무 무거우면 부담될까, 너무 가벼우면 성의 없어 보일까. 은행에서 숫자 하나 틀리면 큰일 나는 일을 하면서도, 그 짧은 안부 문장의 무게는 도무지 계산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선생님 말대로 별일 아닌 척 툭 보냈는데, 그게 정답이었어요. 답장이 온 그날 밤, 저는 오랜만에 명치가 편안했어요. 3주 동안 얹혀 있던 그 숫자 1이 사라진 자리에, 아주 작지만 온기가 돌았거든요. 시기와 방법을 콕 짚어주니까, 막막하던 게 해볼 만한 일로 바뀌더라고요.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하던 아침들이, 이제는 조금 덜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