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여자친구랑 사이가 심하게 안 좋아졌어요. 입대 전에는 매일 만났고 서로 없으면 못 사는 사이였거든요. 입대하면서 여자친구가 울면서 꼭 기다리겠다고 했을 때 저도 울었어요. 군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 사람이 기다려주니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3개월은 괜찮았어요. 매일 편지 오고, 일과 끝나고 전화하면 한 시간씩 통화하고, 면회도 빠지지 않고 왔어요. 그런데 6개월쯤부터 변하기 시작했어요. 편지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더니 2주에 한 번이 됐고, 전화할 때 예전처럼 할 말이 많지 않은 게 느껴졌어요. "오늘 뭐 했어?" 물으면 "별거 없어" 한 마디. 예전에는 카페에서 뭐 먹었는지, 누구 만났는지 다 얘기해줬는데. 결정적이었던 건 면회 때였어요. 간만에 만났는데 예전처럼 뛰어와서 안기지 않더라고요. 걸어오면서 폰을 보고 있었어요. 얼굴을 보니까 화장도 평소보다 덜 하고 왔고, 대화할 때도 딴 데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면회 끝나고 돌아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이 떠나고 있구나' 하는 직감이 왔어요. 그날 밤에 내무반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선임들은 다들 군바리 이별 각이라고 놀리는데 저는 웃을 수가 없었어요. 이 사람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아직 마음이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상담 받았어요. 선생님이 여자친구 사주를 보시더니 다른 남자가 생긴 건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좀 안심이 됐어요. 대학교에 들어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본인 생활이 바빠진 거래요. 새 친구들, 동아리, 알바. 기다리는 마음이 식은 게 아니라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은 거라고요. 제대 후 3개월 안에 관계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는 기운이 보인다고 하시면서, 지금은 집착하지 말고 편하게 안부만 전하라고 하셨어요. 전화 횟수를 줄이고 대신 질 좋은 대화를 하라고요. 군대에서 혼자 끙끙 앓던 걸 누군가한테 털어놓은 것 자체가 큰 위로였어요. 전역까지 남은 시간을 좀 더 의연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