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서 전 남자친구들 인스타를 순서대로 훑고 있는 저를 발견한 날이었어요 ㅋㅋ 웃긴 게, 다 다른 사람인데 이상하게 결이 비슷하더라고요. 다정한데 딱 거기까지, 더는 안 들어오게 벽을 세워두는 사람들. 아 나 또 이런 사람만 골랐네 싶었어요. 물리치료사로 하루 종일 남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데, 정작 제 마음은 왜 매번 같은 데서 뭉치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프리미엄 리포트를 질렀어요. 15만원이 싸진 않지만, 매번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는 값보단 싸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엔 좀 삐딱하게 봤어요. 결국 '넌 사랑받을 자격 있어' 이런 좋은 말로 채워놨겠지 싶었죠. 근데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제가 왜 다가오는 사람은 시시해하고 벽 세우는 사람한테만 매달리는지를, 저한테 사랑이 '쉽게 오면 가짜'라는 공식이 깔려 있어서라고 하셨어요. '편한 사랑을 못 견디는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어 이거 난데 싶었어요. 제일 놀란 건 제가 안 쓴 얘기까지 맞힌 거예요. 저 연애 초반에 상대가 잘해주면 오히려 불안해서 먼저 못되게 구는 버릇이 있거든요. 스스로도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 안 하던 건데, 그걸 어떻게 아셨지 싶었어요. 결국 편한 사랑이 오면 제 손으로 밀어내는 방식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전 남자친구가 두고 간 후드티가 아직 옷장에 있는데, 그거 하나 못 버린 것도 결국 같은 이유였구나 싶더라고요 ㅋㅋ 미련이라기보단, 편하게 곁에 있던 걸 제 손으로 내보내는 게 무서운 거였어요. 읽다가 노트북을 덮고 한참 천장을 봤어요 ㅋㅋ 웃기려는 게 아니라, 그동안 제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가 한 줄로 설명이 되니까 좀 얼떨떨했거든요. 벽 세운 사람한테만 매달리던 게, 사랑을 애초에 힘든 거라고 배워서였다니. 저는 그게 제 취향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취향이 아니라 상처였던 거예요. 제가 저를 이렇게 오래 오해하고 살았구나 싶으니까, 지난 연애들한테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 사람들이 나빴던 게 아니라, 제가 편하게 오는 사랑을 자꾸 밀어낸 거였으니까요. 뒤쪽에는 그럼 앞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저한테 맞는지, 제가 어떤 시기에 이 버릇이 특히 도지기 쉬운지가 적혀 있었어요. 사람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제 안의 스위치를 알아채는 법을 알려주는 느낌이라, 그게 제일 좋았고요. 아쉬운 점도 솔직히 적을게요. 뒤쪽에 제 기질을 설명하는 부분이 표현이 좀 어려워서, 한 번 읽고는 무슨 말인지 잘 안 들어와서 두 번 읽었어요. 내용은 좋은데, 저 같은 사람한텐 조금만 더 쉽게 풀어줬으면 했어요. 이 리포트를 읽고 며칠은 좀 멍했어요 ㅋㅋ 나를 이렇게까지 들여다본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편한 사랑을 못 견디게 만든 오래된 버릇이 있었던 거고, 그건 알아채기만 하면 고칠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사실 하나가 이상하게 위로가 됐어요. 그날 밤 옷장을 열어서, 못 버리던 그 후드티를 드디어 정리했어요. 미련이라 붙잡고 있던 게 사실은 두려움이었다는 걸 아니까, 손이 움직이더라고요. 그래도 저를 이만큼 정확하게 뜯어본 글은 처음이었어요. 매번 같은 사람한테 끌려서 답답한 분들, 상대를 바꾸기 전에 나한테 깔린 공식부터 보면 좀 달라져요. 4점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