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꽃을 다듬다가도 자꾸 휴대폰 화면을 켜는 저를 발견했어요.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었는데, 만나면 분위기도 좋고 리액션도 다정한데 이상하게 그다음이 없었어요. 헤어질 때는 분명 즐거워 보였는데, 집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어요. 먼저 연락도 잘 안 오고, 다음 약속도 늘 제가 꺼내야 했고요. 만날 때의 온도랑 헤어진 뒤의 온도가 이렇게 다르니, 저는 매번 롤러코스터를 탔어요. 좋다는 건지 아닌지 도무지 읽히질 않아서, 스물넷이나 먹고 이런 걸로 애태우는 제가 한심하다가도 밤만 되면 또 그 사람 생각이었어요. 손님한테 줄 다발을 묶다가 리본을 몇 번이나 풀었어요.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손이 자꾸 어긋나더라고요. 꽃은 시들기 전에 팔아야 하는데, 저는 그 앞에서 휴대폰만 뒤집었다 엎었다 했어요. 답장이 안 오면 화면을 껐다가, 혹시 몰라 또 켜고요.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썸 상담을 신청했어요. 이 사람이 나한테 호감이 있긴 한 건지, 아니면 그냥 원래 다정한 사람인 건지, 그거 하나만 알면 될 것 같았어요. 좋아하는지 아닌지 그 답 하나에 제 며칠의 기분이 통째로 매여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이 '이 사람은 마음이 없어서 소극적인 게 아니라, 확신이 설 때까지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흐름'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런 사람한테는 재촉이 오히려 뒷걸음질을 부르니까, 편안한 자리를 자주 만들어 주면서 상대가 스스로 다가올 여백을 두라고 하셨어요. 제가 조급해서 자꾸 밀어붙이던 게 되레 역효과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사실 저는 그 사람이 미지근하다고 속으로 원망하고 있었어요. 왜 나만 애쓰나, 왜 나만 다음 약속을 꺼내야 하나 싶어서요.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늘 제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근데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그 사람 나름의 속도였던 거예요. 저는 제 불안을 상대의 마음으로 옮겨 읽고 있었던 거고요. 미지근한 건 그 사람 온도가 아니라, 확신 없는 제 마음이었어요. 그 말대로 한 달쯤, 저는 연락 텀을 늘리고 만날 때 편하게 웃어주는 데만 신경 썼어요. 답장이 늦어도 화면을 붙들고 있지 않으려고, 일부러 가게 일에 손을 더 담갔고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먼저 연락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사진 한 장, 그다음엔 안부, 그러다 어느 저녁에 다음에 언제 보냐고 자기가 먼저 묻더라고요. 제가 밀어붙일 때는 그렇게 안 오던 연락이, 손을 놓으니 오더라고요. 결국 지난주에 사귀기로 했어요. 돌아보면 그 사람에겐 그 사람의 속도가 있었어요. 저는 늘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오늘 실수한 건 없나 되짚느라 바빴는데, 정작 어긋난 건 제 마음의 시계였던 거예요. 제가 제 조바심을 상대의 무관심으로 오해했던 거고요. 선생님이 그 결을 짚어주지 않았으면 저는 아마 조급하게 굴다 지레 포기했을 거예요. 좋아하는 마음이 죄도 아닌데, 저는 그 마음 때문에 자꾸 저를 낮추고 있었거든요. 요란하게 뭘 해준 것도 아닌데, 사람 하나를 제대로 읽는 눈을 잠깐 빌린 기분이었어요. 그거 하나로 결과가 이렇게 달라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