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제가 이 후기를 쓰려고 노트 앱에 초안을 잡았는데 세 번이나 지우고 다시 썼어요. 제 이야기를 누가 읽는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이걸 쓰면 누군가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저는 올해 마흔일곱인 여자예요. 스물넷에 결혼해서 스물다섯에 첫째, 스물일곱에 둘째, 서른에 셋째를 낳았어요. 남편은 사업을 한다고 했는데 제가 아는 건 항상 돈이 없다는 것과 가끔 술 냄새를 맡으며 새벽에 들어온다는 것뿐이었어요. 시어머니는 아들 편이었고 친정 부모님은 '참아라, 아이들이 있지 않느냐'고 하셨고요. 20년을 참았습니다. 왜 참았느냐고 물으시면 답은 간단해요. 아이들. 엄마 아빠가 헤어지면 상처받을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매번 이혼 서류를 검색하다가도 꺼버렸어요. 대신 저를 죽였어요. 감정을 느끼면 아프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남편이 새벽에 술 취해 들어와도, 카드값을 또 연체해도, 생일을 잊어도. 다 괜찮다고, 나는 괜찮다고. 그 말을 20년간 했더니 진짜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됐어요. 전환점은 막내가 대학에 들어간 날이었어요. 입학식에서 막내가 웃으면서 '엄마 이제 좀 쉬어'라고 했을 때 눈물이 쏟아졌어요. 아이들이 다 컸어요. 더 이상 핑계가 없어졌어요. 그해 이혼했습니다. 합의 이혼이었어요. 남편도 알고 있었겠죠, 이 결혼이 진작에 끝났다는 걸. 재산 분할 같은 건 없었어요. 나눌 게 없었으니까. 전세금 반을 받아서 원룸을 구했고 그렇게 마흔다섯의 새 출발을 했어요. 이혼 후 첫 일 년은 '나'를 찾는 시간이었어요. 20년 동안 엄마와 아내로만 살았더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어요. 커피를 좋아하는지 차를 좋아하는지도요. 하나씩 시도했어요. 요가를 배워보고, 수채화를 그려보고, 혼자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어보고. 어색했지만 조금씩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올해 초에 동네 도서관 독서 모임에 나갔어요. 거기서 한 남자분을 만났어요. 저보다 두 살 위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도 5년 전에 이혼하셨더라고요. 아이는 없고 혼자 살고 계셨대요. 모임 끝나고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게 됐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처음에는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화가 편하고, 억지로 분위기를 만들지 않아도 침묵이 불편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들을 때 판단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그 사람 생각을 하면서 웃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마흔일곱 살의 제가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웃다니. 20년간 죽여놓았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게 느껴졌어요. 무서웠어요. 솔직히 너무 무서웠어요. 한번 크게 실패한 결혼이 있으니까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게 두려웠어요. 이 감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20년간 감정을 억누른 사람이 처음 친절을 받고 착각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됐어요. '그냥 외로워서 그런 거 아니야?' 라는 자문을 매일 했어요. 그래서 박도사를 신청한 거예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어요. 결과지가 왔을 때 아이들이 다 자기 집으로 간 조용한 저녁이었어요. 선생님이 제 사주 전체를 봐주시면서 이런 문단으로 시작하셨어요. '이 사주의 전반부는 타인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그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시간 동안 당신 자신이 필요로 했던 사랑은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착각이 아닙니다. 20년간 닫아두었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문단을 읽고 원룸 바닥에 주저앉아서 20년치 울음을 쏟았어요. 참 많이도 울었어요. 결혼생활 20년 동안 울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이제야 우니까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날 밤 새벽 네 시까지 울면서 결과지를 읽고 또 읽었어요. 선생님이 새로 만난 분과의 궁합도 봐주셨는데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관계'라고 하셨어요. 20년간 저를 무시하는 관계에 있었던 제가 필요로 하는 건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사람'이래요. 그리고 그분이 그런 구조라고요. 다만 조심할 점도 알려주셨어요. 오랜 억압에서 벗어난 직후라 감정의 진폭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요. 너무 빨리 깊어지면 예전 결혼의 상처가 겹쳐서 이 관계까지 오염될 수 있으니 최소 반년은 지금처럼 주 1회 만남을 유지하면서 '연인이 아닌 상태에서의 깊은 교감'을 쌓으라고요. 이 시간이 제게도 필요하고 상대에게도 필요하대요. 지난주에 그분이랑 도서관 모임 끝나고 산책을 했어요. 봄꽃이 지고 있었는데 그분이 '꽃이 지는 것도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꽃이 지는 건 슬픈 거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져야 다음 꽃이 피니까요'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데 제 20년이 떠올랐어요. 져야 다음 꽃이 핀다. 제 첫 번째 결혼이 졌으니까 지금 이 감정이 피어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거라고, 선생님의 결과지와 그분의 그 한마디가 겹치면서 처음으로 '아, 괜찮구나' 싶었어요. 마흔일곱에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이 착각이 아니라는 확인을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20년간 죽여놓았던 마음이 다시 뛰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뛰고 있어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한번 잃어본 사람만 알아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저처럼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오신 분이 계시다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때가 되면 피어요. 진짜로. 제가 증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