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3년을 만났는데 요즘은 설렘이라는 게 하나도 안 남은 것 같았어요. 싫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익숙한 사람 옆에 앉아 있는 기분이요. 이게 사랑이 식은 건지, 아니면 오래된 연애가 원래 다 이런 건지 판단이 안 서서 밤마다 혼자 앓았어요. 스물아홉, 슬슬 결혼도 생각해야 하는 나이라 이 사람이랑 계속 가도 되는 건지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밥을 먹다가도 문득 멍해졌어요. 마주 앉아 같은 메뉴를 시키고 익숙하게 수저를 놓는데, 우리 사이에 할 말이 이렇게 없었나 싶어 목이 뻐근해지곤 했어요. 예전엔 하루 있었던 일을 앞다퉈 쏟아내느라 반찬이 식는 줄도 몰랐는데, 요즘은 휴대폰만 번갈아 보다 조용히 일어났어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죄스러워서, 그게 더 저를 눌렀어요. 주변에선 3년이면 그럴 때 됐다고, 원래 다 그런 거라고들 했어요. 근데 그 말이 위로가 안 됐어요. 남들 다 그렇다는 말은, 그럼 이대로 참고 살아야 한다는 소리 같아서요. 저는 참는 게 아니라 답이 알고 싶었어요. 궁합 상담을 신청한 것도 누가 대신 결정해 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제 마음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요. 헤어질 이유를 찾는 건지 남을 이유를 찾는 건지, 그것부터 제가 헷갈렸거든요. 선생님이 두 사람 구조를 보시더니 '지금은 초반의 뜨거움이 지나고 관계가 한 단계 깊어지는 문턱이라, 많은 사람이 이 시기를 권태로 착각해 관계를 놓는데 두 사람은 오히려 여기서부터 진짜 편안함이 시작되는 조합'이라고 하셨어요. 그 문장을 읽는데 왈칵 눈물이 났어요. 없어졌다고 여긴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모양을 바꾼 거였다는 게, 왜 그렇게 위로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설렘이 없는 걸 사랑이 없는 걸로 오해하지 말라는 말이 오래 남았어요. 저는 예전의 두근거림을 그 사람한테서 못 찾는다고 그 사람을 탓하고 있었거든요. 왜 예전 같지 않냐고, 왜 이제 나한테 안 설레냐고 속으로 원망했어요. 근데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관계의 계절이 바뀐 걸 못 알아본 저였어요. 봄에 피던 꽃을 왜 여름엔 안 피우냐고 나무를 탓한 꼴이었던 거예요. 여름엔 여름의 열매가 맺히는 건데요. 집에 와서 그 사람 자는 얼굴을 한참 봤어요. 3년 동안 이 사람이 저한테 준 사소한 것들이 그제야 하나씩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아프면 말없이 죽을 끓여다 주고, 야근하는 날이면 회사 앞까지 데리러 오던 사람이었어요. 두근거림이 없다고 그 손길들까지 없던 셈 치려던 저를, 그날 밤 자는 얼굴 앞에서 반성했어요. 아직 결혼을 정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적어도 설레지 않아서 헤어져야 하나라는 잘못된 질문에서는 벗어났어요. 같은 자리에서 오래 흔들리던 마음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요. 여전히 예전만큼 두근거리진 않아요. 그건 솔직히 아직 조금 아쉬워요. 그래도 이제는 그 잔잔함이 식은 게 아니라 익은 거라는 걸 아니까, 그 아쉬움까지 품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래 만난 사람이라면 다 한 번쯤 지난다는 그 문턱을, 저는 하마터면 끝이라고 오해할 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