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작년 이맘때쯤 선생님께 썸 상담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그때 좋아하던 사람과는 끝내 잘 되지 않았지만, 리포트에서 짚어 주신 제 연애 패턴이 하도 정확해서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전혀 다른 고민을 들고 다시 찾아왔어요. 연애가 아니라 시험이요. 저는 서른 살이고 치과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해요. 지금 일이 싫은 건 아닌데, 몇 년째 마음 한구석에 공무원 시험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스물일곱부터 할까 말까 재기만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걸려요. 이러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될까 봐 무서웠어요. 퇴근하고 인강 결제창까지 갔다가 그냥 닫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한번 시작하면 최소 몇 년인데, 붙는다는 보장도 없이 지금 이 안정을 놓는 게 맞나. 그 질문 하나가 저를 몇 달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어요. 누구한테 물어도 결국 네가 알아서 하라는 말뿐이라, 오히려 더 외로워졌고요. 명절에 친척들이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물을 때마다 웃으며 넘겼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내내 창밖만 봤어요. 박도사 문답은 자유 질문을 세 개 할 수 있어서, 저는 이렇게 물었어요. 첫째, 지금 시험을 시작해도 되는 시기인지. 둘째, 붙을 흐름이 있다면 대략 언제쯤인지. 셋째, 지금 직장을 병행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그만두고 올인해야 하는지요. 선생님이 제 사주를 보시더니 '당신은 뒤늦게 트이는 대기만성 구조라, 스물일곱에 시작하지 못한 걸 후회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고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서른 이후로 공부한 것이 결과로 이어지는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한다고요. 남들보다 한참 늦었다고, 출발선을 놓쳤다고 스스로를 몇 년째 깎아내리고 있었는데, 그 한 줄에 가슴에 얹혀 있던 돌이 툭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두 번째 질문에는, 내후년 상반기에 결실이 맺히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하셨어요. 다만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는 기초를 다지는 시기라, 조급하게 성적에 일희일비하면 오히려 페이스가 무너진다고요. 이 시기 구분이 저한테는 제일 큰 위안이었어요. 언제까지 어떤 마음으로 버텨야 하는지가 눈앞에 그려지니까요.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이 제일 무서운 건데, 출구에 대략 언제쯤 불빛이 보일지 알려 주신 셈이거든요. 세 번째, 병행이냐 올인이냐에는 '당신은 완전히 등 떠밀린 상태보다 최소한의 안전판이 있을 때 오히려 집중력이 올라가는 사람'이라, 처음 1년은 직장을 유지하며 준비하는 편이 맞다고 하셨어요. 그러다 내년 하반기, 실력이 궤도에 오르는 시점에 승부를 걸어 보라고요. 무작정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시는 게 오히려 더 믿음이 갔어요. 제 성정을 알고 하시는 말 같았거든요. 무엇보다 월별 택일 캘린더가 정말 실용적이었어요. 몇 월에는 기초를 넓히고, 몇 월에는 실전에 들어가고, 컨디션이 떨어지기 쉬운 달까지 표시가 되어 있어서 그대로 공부 계획표로 옮겨 붙였어요. 막연히 열심히가 아니라 달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손에 잡히는 게 이 리포트의 진짜 값이라고 생각해요. 시험이란 게 결국 긴 마라톤인데, 구간마다 페이스를 어떻게 나눠 써야 하는지 코치를 옆에 둔 기분이었거든요. 사실 이번에 다시 상담을 신청하면서도 긴가민가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어요. 연애도 아니고 시험 같은 걸 사주로 물어봐도 되나 싶었거든요. 근데 선생님은 연애든 진로든 결국 사람이 언제 어떤 마음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보는 거라, 질문의 종류는 다르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리포트를 읽다 보니, 제가 시험 앞에서 자꾸 주저앉는 것도 예전에 연애에서 확신 없이는 한 발도 못 떼던 그 성향과 뿌리가 같았어요. 결국 저라는 사람이 결정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서는지를 통째로 다시 배운 셈이에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붙는다 안 붙는다 같은 무책임한 확언을 절대 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대신 지금은 씨를 뿌리는 시기다, 이맘때는 조급해하지 마라, 그런 식으로 계절을 짚어 주시니까 오히려 더 믿음이 갔어요. 요즘 저는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그 월별 캘린더를 펼쳐 봐요. 지금이 어느 구간인지만 확인해도 신기하게 숨이 골라지거든요. 다 읽고 나서 저는 그날 밤 인강을 결제했어요. 몇 달을 못 눌렀던 그 버튼을요. 붙는다는 보장을 받아서가 아니에요. 언제쯤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하는지 지도를 받은 느낌이라, 이제는 겁 대신 계획이 생겼거든요. 예전 연애 상담 때도 그랬지만, 선생님은 대신 결정해 주는 분이 아니라 제가 저를 믿고 결정하게 도와주는 분이에요. 시험이든 연애든 그 점은 똑같더라고요. 그 뒤로는 시험 얘기만 나오면 겁부터 집어먹던 버릇이 저도 모르게 사라졌어요. 늦은 게 아니라 제 때가 따로 있는 거였다는 그 말을, 요즘도 공부가 힘들 때마다 되뇌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