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이 사람 앞에서 자꾸 작아졌어요. 스물아홉이고 필라테스 강사예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얼마 전에 긴 연애를 끝낸 지 얼마 안 됐다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혹시 내가 그냥 빈자리 채우는 사람인 건 아닐까, 아직 전 사람 못 잊은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자꾸 저를 갉아먹었어요. 다가가고 싶은데 그 사람 상처를 건드릴까 봐, 또 저는 저대로 상처받을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어요. 수업 시간엔 회원들 앞에서 웃으며 동작을 시연하다가도, 끝나고 텅 빈 센터에 혼자 남으면 그 사람 인스타를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는지 몰라요. 최근 게시물이 언제 올라온 건지, 좋아요는 누가 눌렀는지, 그런 걸 뜯어보는 제가 참 우스웠어요. 사주로 남의 마음, 그것도 이별한 지 얼마 안 된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나 싶으면서도 답답해서 상담을 신청했어요. 상대 사주를 짚어 가던 선생님이 '이 사람은 지난 이별로 마음의 문을 닫은 게 아니라, 다음 사람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스스로 조심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밀어내는 게 아니라 자기를 검열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데 제가 품고 있던 최악의 상상, 아직 전 사람을 못 잊었을 거라는 그 두려움이 조용히 가라앉았어요. 그리고 제가 조바심에 빨리 확답을 받으려 하면 이 사람은 오히려 부담을 느껴 물러설 사람이라고, 지금은 안전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천천히 쌓는 게 먼저라고 하셨어요. 급하게 고백하는 대신, 이 사람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는 시기라고요. 8월 말쯤 상대 마음의 경계가 한결 느슨해지는 흐름이 오니 그때를 기다리라는 조언도 주셨어요. 제가 매일 밤 그 사람 인스타를 들락거리며 최악을 상상하던 그 불안에는, 사실 이름이 없었어요. 질투도 아니고 미움도 아닌, 그냥 내가 이 사람한테 아무것도 아닐까 봐 두려운 마음이요. 선생님이 그 사람은 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있는 거라고 짚어 주신 순간, 그 이름 없던 불안이 비로소 형체를 갖더라고요. 형체를 아니까 겁이 덜 났어요. 지금은 확답을 조르는 대신, 이 사람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자리 하나가 되어 주려고 해요. 8월 말이라는 그 시기를 알고 나니, 조급하게 굴던 손을 겨우 내려놓게 됐고요. 저는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자꾸 작아지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 앞에서도 그랬어요. 다가가고 싶은 만큼 물러서고, 궁금한 만큼 인스타만 훔쳐보고요. 근데 그 사람이 마음을 닫은 게 아니라 자기를 검열하는 중이라는 걸 아니까, 저도 최악을 상상하며 저를 몰아세우던 걸 멈출 수 있었어요. 둘 다 겁이 나서 각자 조심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걸 아는 것만으로 이 짝사랑이 조금은 덜 외로워졌어요. 제가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혼자 인스타만 들여다보던 그 불안을, 선생님이 대신 언어로 정리해 주신 것 같았어요. 지금은 조급함을 내려놓고 그냥 그 사람 곁에서 편한 사람이 되려고 해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어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방향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든든할 줄 몰랐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수업하던 날들이, 이제는 조금 덜 외로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