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헤어진 지 두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그 사람 생각부터 났어요. 서른아홉에 이러고 있는 게 스스로도 낯설었어요. 개발 일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로그부터 뒤져 원인을 찾는 사람인데, 정작 제 이별은 아무리 뒤져도 원인 줄이 안 잡혔어요.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아서 상담을 신청했어요. 원인 없이 그냥 슬픈 채로 지나가는 걸, 저는 견디질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출근은 꼬박꼬박 했어요. 스탠드업 회의에서 어제 뭘 했고 오늘 뭘 할지 또박또박 말하고, 코드 리뷰도 평소처럼 했어요. 아무도 제가 무슨 두 달을 보내고 있는지 몰랐어요. 멀쩡한 얼굴로 하루를 버티는 게 실은 제일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 사람이랑 쓰던 협업 앱에 아직 그 이름이 남아 있어서, 스크롤을 내리다 그 프로필이 스칠 때마다 손이 잠깐 멈췄어요. 지워버리면 되는데 그 버튼 하나를 못 눌렀어요. 지우는 순간 정말 끝날 것 같아서요. 그런 사소한 걸 며칠씩 미루는 제가 저도 낯설었어요. 선생님은 제 얘기를 길게 듣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감정이 식어서 끝난 게 아니라, 서로 표현하는 방식이 어긋난 채로 오래 쌓인 것'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애정을 일이나 챙김으로 표현하는 사람인데, 상대는 말과 다정함으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쪽이었대요. 저는 제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는데, 그 최선이 상대한테는 잘 안 닿는 언어였던 거예요. 이 말이 아팠는데 이상하게 위로도 됐어요. 제가 사랑을 안 준 게 아니라, 다른 통로로 주고 있었던 거니까요. 저는 그 사람 자취방 형광등을 갈아주고, 노트북이 느리다길래 밤새 포맷을 해다 준 사람이었어요. 그게 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정작 그 사람이 듣고 싶었던 건 오늘 예뻐 보인다는 말 한마디였던 거예요. 헤어진 이유가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서로 번역이 안 된 두 사람이라서라는 게, 저를 덜 미워하게 만들었어요. 미운 게 아니었어요. 내가 그렇게 애썼는데도 그게 그 사람한테 한 번도 사랑처럼 도착하지 못했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던 거예요. 두 달 동안 저를 붙들던 게 그거였다는 걸 그 문장 앞에서야 알았어요. 선생님이 앞으로의 흐름도 짚어주셨는데, 지금은 관계를 복기하며 저를 다시 세우는 시기라고 하셨어요. 이 구간을 건너뛰고 급하게 누굴 만나거나 매달리면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고요. 버그를 근본 원인 없이 임시로 덮으면 결국 같은 자리에서 또 터지잖아요. 사람 관계도 그렇다는 말로 들려서 이상하게 수긍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 시기를 대충 넘기면 결국 또 같은 지점에서 멈출 테니까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몰라요. 다시 만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적어도 제가 뭘 잘못 번역하고 있었는지는 이제 알아요. 다음엔 형광등을 갈아주는 대신, 오늘 예뻐 보인다는 말을 먼저 건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거 하나만으로도 다음 사랑은 좀 덜 어긋날 것 같아요. 원인을 못 찾아 답답하던 사람한테는, 이 정리 하나가 꽤 큰 수확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