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기획서를 쓰다 말고, 커서만 깜빡이는 화면을 십 분째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스물여섯, 게임 기획자예요. 회의 때는 멀쩡하게 웃으며 발표하고 자리에 돌아오면, 머릿속은 온통 그 사람 생각으로 하얘졌어요. 이 사람은 교대 근무에 출장까지 잦아서, 저랑 앞날을 그려 보려고 하면 자꾸 그림이 중간에 끊겨요. 좋은데, 이 좋은 게 오래 버텨 줄 수 있는 건지 그게 안 보여서 답답했어요. 그 사람이 출장 간 밤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 야근하고 집에 와서는, 불도 안 켜고 현관에 한참 서 있었어요. 그래서 궁합을 신청했어요. 선생님이 '두 분은 함께 있는 절대 시간이 적어도 마음의 밀도가 높아서, 자주 못 봐도 헐거워지지 않는 구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제가 제일 무서웠던 게 안 보는 사이에 마음이 조용히 식어 버리는 거였거든요. 미운 게 아니라, 어느 날 그 사람 마음에서 내가 슬그머니 지워질까 봐, 그게 견딜 수 없이 무서웠던 거예요. 근데 저희는 그렇게 멀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거기에 더해, 상대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시기마다 관계가 한 단계씩 깊어지는 흐름이라, 떨어져 있는 시간을 불안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바꿔 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저한테는 방향이 됐어요. 사실 리포트를 받기 전까지, 저는 이 관계가 오래 못 갈 거라는 결론을 반쯤 내려 두고 있었어요. 자주 못 보는 연애는 결국 식는다고 남들이 그렇게들 말하니까요. 근데 우리한테는 그 공식이 안 맞는다는 걸 확인받고 나니, 남들 기준으로 우리 사이를 재던 걸 그만두게 됐어요. 자주 못 보는 게 흠이 아니라, 그럼에도 헐거워지지 않는 게 우리의 강점이라는 거잖아요. 이제 그 사람 출장 갈 때 예전처럼 현관에 얼어붙어 있지 않아요. 잘 다녀오라고 웃으면서 보내요. 아직 완전히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혼자 최악을 상상하며 밤을 지새우진 않게 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