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리포트를 받고 딱 한 문장에 자꾸 눈이 갔어요. 겨울 문턱에서 관계의 온도가 한 번 바뀐다. 이게 좋은 쪽으로 바뀐다는 건지 나쁜 쪽인지, 그 한 줄이 궁금해서 며칠 밤을 그 페이지만 다시 펼쳤어요. 접었다 폈다 하도 해서 그 페이지 모서리만 부드러워졌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추가질문을 신청했어요. 솔직히 만 원짜리 후속 질문에 뭘 얼마나 더 해주시겠나 싶었어요. 짧게 한두 줄 답이 오고 말겠지, 했거든요. 서른여덟이나 돼서 이런 데 자꾸 마음을 기대는 제 자신이 좀 우습기도 했고요 ㅋㅋ 다 큰 어른이 문장 한 줄에 매달려 있는 꼴이라니. 그런데 그 한 줄이 그렇게 무서웠어요. 좋은 쪽이면 다행인데 나쁜 쪽이면 어쩌나, 그 겨울 문턱을 넘기고 나면 이 사람이 영영 멀어져 버리는 건 아닌가. 그 생각이 들면 자려고 누웠다가도 다시 불을 켜고 그 페이지를 폈어요. 확실하지 않은 미래가 이렇게 사람을 갉아먹는 건지, 이 나이 되도록 몰랐어요. 알 수 없는 한 문장 앞에서 며칠을 서성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만 원을 결제했어요. 그런데 답을 받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선생님이, 온도가 바뀐다는 건 상대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워진다는 뜻이지 멀어진다는 뜻이 절대 아니라고, 그 조심스러움을 거리두기로 오해하면 오히려 당신이 먼저 밀어내게 되니 바로 그때가 다가갈 자리라고 짚어주셨어요. 저는 딱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이거든요. 상대가 조금만 조용해지면 아 마음이 식었구나 지레짐작하고, 상처받기 전에 제가 먼저 정리해 버리는 버릇이요. 말한 적도 없는 그 버릇을 어떻게 아셨는지 좀 놀랐어요. 게다가 그 변화가 오면 이런 말을 이런 톤으로 건네보라며 예시 문장까지 붙여주셨어요. 막연히 언제쯤이라는 시기 얘기가 아니라, 그 순간에 정확히 뭘 하면 되는지가 손에 잡히니까 그제야 마음이 놓였어요. 저는 늘 그 순간이 오면 또 감정에 휩쓸려 일을 그르칠까 봐 그게 제일 겁났거든요. 손에 쥔 예시 문장 하나가, 그 겁을 반은 덜어주더라고요. 사실 추가질문 하나에 만 원이라 별거 아니라고 여겼는데, 막상 답을 받고 보니 그 한 문장이 며칠 동안 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불안을 통째로 걷어가더라고요. 본문 리포트를 처음 받았을 때보다, 오히려 이 짧은 후속 답 한 줄이 저한텐 더 크게 와닿았어요. 불안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덩어리로 있을 땐 산더미 같은데, 누가 그건 이런 뜻이에요 하고 정확히 이름을 붙여주면 거짓말처럼 작아지거든요. 저는 그 조심스러움을 여태 멀어짐으로 잘못 번역하고 있었던 거예요. 저녁 내내 카톡 목록만 위아래로 넘기던 사람이라, 이렇게 그때가 오면 이렇게 하면 돼요 하고 방향을 하나 쥐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날은 오랜만에 잠이 잘 왔어요. 그동안은 미래가 캄캄한 게 아니라, 캄캄한 걸 혼자 마주 봐야 하는 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옆에 방향을 짚어주는 손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겨울 문턱이 덜 무섭게 느껴졌어요. 짧은 답변인데 알맹이는 꽉 차 있었어요. 만 원에 이런 답을 받아도 되나 싶을 만큼, 매긴 값이 무색한 한 줄이었어요. 5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