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우리 좀 천천히 가자.' 이 말을 한 다음 날 그 사람이 사라졌어요 ㅋㅋ 딱 3개월이었는데 그 3개월이 어찌나 뜨거웠는지, 갑자기 연락이 끊기니까 제가 뭘 잘못했나 밤새 되짚었어요. 서른다섯에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별별 이별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은 처음이라 멍했어요. 비행 스케줄로 시차에 절어 살면서도 착륙만 하면 그 사람 카톡부터 확인했어요. 마지막 대화를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몰라요. 나눴던 대화 스크롤을 위로 올리다 보면 어느새 처음 만난 날까지 가 있었고요. 짧아서 정리도 빠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매듭이 없으니 더 안 놓아졌어요. 신청하면서도 이런 짧은 연애를 무슨 재회씩이나 하나 좀 민망했는데, 선생님이 제 그 마음부터 짚으셨어요. 짧아서 가벼운 게 아니라 짧고 강렬해서 오히려 매듭이 안 지어진 거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이 갑자기 발을 뺀 건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너무 빨리 깊어지는 게 스스로 감당이 안 돼서 도망친 구조라고 하셨어요. '천천히 가자'가 실은 겁이 나서 나온 말이었던 거예요. 그 해석이 맞는 것 같아서 좀 진정됐어요. 무작정 매달리지 말고 그 사람이 겁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라는 방향도 구체적이라 좋았어요. 짧았다고 자책하던 저 같은 분들, 그 시간이 가벼웠던 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