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같이 스터디를 하던 사이였어요. 회계사 준비를 함께하면서 몇 년을 봐온 사람이라, 어느 순간부터 이게 친구의 마음인지 그 이상인지 저조차 헷갈렸어요.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이 애매한 감정이 제일 어렵더라고요. 고백했다가 몇 년 쌓은 스터디도, 친구도 다 잃을까 봐요. 그 사람도 저한테 잘해주긴 했어요. 시험 끝나면 제일 먼저 연락 오고, 제가 아프다고 하면 걱정해주고요. 근데 그게 원래 다정한 사람이라 그런 건지, 저한테만 그런 건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 애매함 속에서 괜히 혼자 설렜다 실망했다를 반복했어요. 솔직히, 왜 이렇게까지 티를 안 내나 싶어서 그 사람이 얄미울 때도 있었어요. 제일 힘든 건 이 마음을 어디 털어놓을 데가 없다는 거였어요. 친구들한테 말하면 당장 고백하라고 부추길 게 뻔한데, 저는 그 사람과의 지금 이 편안한 거리도 잃고 싶지 않았거든요. 같이 공부하다 눈이 마주치면 괜히 먼저 시선을 피하고, 그 사람이 무심코 건넨 커피 한 잔에 하루 종일 그 온도를 곱씹고. 스물셋이 이렇게 유치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마음이 제 말을 안 들었어요. 썸 상담을 신청한 것도, 고백을 할지 말지 그 타이밍이 제일 궁금해서였어요. 선생님이 짚어낸 건 뜻밖의 지점이었어요. 이건 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 그 사람 쪽에서도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는 상태라고 하셨거든요. 다만 그 사람이 먼저 움직이는 유형이 아니라, 확신이 설 때까지 재고 또 재는 성격이라 겉으로 티가 안 났던 거라고요. '이 사람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관계가 틀어질까 봐 당신만큼 조심하고 있는 거예요.' 이 문장에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어요. 얄미워하던 그 사람이 사실은 저랑 똑같은 이유로 멈춰 있었던 거예요. 원망이 머쓱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선생님은 고백 타이밍도 짚어주셨어요. 시험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끝나고 두 사람 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시기가 오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마음을 내비치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요. 무작정 지르지 말고 그 시기를 기다리라는 게 저한테는 큰 힌트였어요. 그래서 조급함을 좀 내려놓고 기다렸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시험이 끝난 날 제가 조심스럽게 마음을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이 사실 자기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조심스럽게 만나보는 중이에요. 고백하던 날, 저는 목소리가 떨려서 말을 몇 번이나 멈췄어요. 몇 년을 쌓은 이 편안한 사이가 이 한마디로 부서질까 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사실 자기도 그랬다고 웃으며 말하는데, 그동안 저 혼자 재고 참았던 시간이 한꺼번에 우스워지더라고요. 그 오랜 눈치싸움이, 알고 보면 둘 다 상대를 아끼느라 그랬던 거였어요. 지금은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에요. 친구일 때 쌓은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설렘보다 먼저 오는 게 편안함이라 좋아요. 혹시 저처럼 친구인지 그 이상인지 몰라서 고백도 못 하고 애태우는 분이 있다면요. 그 애매함이 나 혼자만의 것인지부터 확인해 보시면, 용기 내는 게 훨씬 쉬워져요. 몇 년을 재던 그 애매함이 알고 보니 둘 다 서로를 아끼던 마음이었다는 게, 저는 아직도 놀라워요. 저는 그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