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솔직히 저는 제가 연애를 못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시작은 늘 뜨거운데, 어느 순간 상대가 저를 부담스러워하고, 저는 매달리다 지쳐서 끝나요. 이번이 세 번째였어요. 다 다른 사람이었는데 끝나는 모양은 소름 끼치게 똑같았어요.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하면 하루 종일 사람을 웃으면서 상대하거든요. 밖에서 표정으로 에너지를 다 쓰고 집에 오면, 저는 저를 진짜로 붙잡아 줄 사람 하나가 그렇게 간절했어요. 그런데 하필 제가 불이 붙는 사람은 늘 저한테 거리를 두는 사람이었어요. 이별하고 나서는 밥이 안 넘어갔어요. 라면 하나를 끓여도 두 젓가락 뜨고 그대로 불려 버리기 일쑤였고,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지면 그때부터 아침까지 천장만 봤어요. 이번 이별 뒤엔 몸이 먼저 반응했어요. 웃는 게 일인 직업인데, 거래처 앞에서 웃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면 제 얼굴이 낯설었어요. 어떻게 웃는 건지 잊은 사람 같았거든요. 손끝은 늘 차가웠고, 밥때가 돼도 배가 고픈 줄을 몰랐어요. 그러다 밤이 되면 갑자기 허기가 몰려와서 아무거나 욱여넣고는, 또 그런 저 자신이 한심해서 이불을 뒤집어썼어요. 제일 무서운 건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세 번째면 이제 우연이 아니잖아요.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한테 있는 거구나, 그 생각이 들면 내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맞긴 한가 하는 데까지 마음이 굴러떨어졌어요. 프리미엄 리포트를 신청한 건, 이번엔 위로가 아니라 이유가 알고 싶어서였어요. 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다 읽는 데 이틀이 걸렸는데, 읽다가 몇 번을 멈췄어요. 선생님은 제가 왜 다가오는 사람한텐 시들해지고 멀어지는 사람한테만 불이 붙는지를, 어릴 때 제가 사랑을 '쟁취해야 겨우 얻는 것'으로 배웠기 때문이라고 풀어주셨어요. 편하게 주어지는 애정은 어쩐지 가짜 같고, 애써서 얻어낸 애정만 진짜처럼 느껴지는 구조라고요. '당신은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증명해야 하는 일이라고 배운 사람이에요.' 이 문장에서, 저는 결국 울었어요. 그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는 제 밑바닥을, 사주 몇 글자로 이렇게 정확히 짚는다는 게 무서울 정도였어요. 저조차 몰랐던 걸요. 리포트 뒤쪽에는 그럼 앞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하는지, 제가 어떤 시기에 이 패턴을 유독 반복하기 쉬운지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어요. 사람을 바꾸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제가 저를 알아보는 법을 알려주는 느낌이었어요. 지금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깔끔히 정리된 건 아니에요. 아직 아프고요. 그런데 적어도 다음번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양으로 넘어지진 않을 것 같아요. 이 글을 다 읽고 저는 오래 앉아 그동안의 저를 가만히 안아줬어요. 못나서가 아니라 그렇게 배웠을 뿐이라는 걸 아니까, 처음으로 저를 덜 미워할 수 있었어요. 사랑을 증명하느라 늘 지쳐 있던 저한테, 이제 그만 애써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저한테요. 그날 밤엔 오랜만에 라면이 아니라 제대로 지은 밥을 차려 먹었어요. 저처럼 매번 같은 사람한테 끌려서 같은 자리에서 주저앉는 분이 있다면,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내 안의 그 이유부터 한 번은 마주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