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손님 없는 오후에 책방에 혼자 앉아 있으면, 저는 자꾸 왜 결혼이 이렇게까지 무서울까를 생각했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도 막상 결혼 얘기만 나오면 도망치고 싶어지는 저를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서른일곱이나 됐는데 아직도 이러는 게 답답해서, 이번엔 아예 뿌리까지 캐보자는 마음으로 큰맘 먹고 프리미엄 심층 분석을 신청했어요 ㅋㅋ. 선생님이 제 두려움의 뿌리를 짚어주셨는데, 어릴 때 부모님 이혼을 지켜본 경험이 결혼은 결국 깨지는 것이라는 각본을 제 안에 심어놨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걸 그냥 제 성격 탓이라고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오래전에 학습된 방어였던 거예요. 결혼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때의 어린 제가 아직도 무서워하고 있었던 거죠. 이 대목을 읽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서요. 나만 이렇게 겁내는 줄 알았는데, 겁내는 데는 다 사연이 있었다는 걸 아니까 어깨가 좀 가벼워졌어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 그 집 공기, 문 닫고 낮게 오가던 말소리 같은 게 아직도 제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나 봐요. 좋은 사람이 결혼 얘기를 꺼낼 때마다 이유 없이 도망치고 싶던 게, 사실은 이유가 너무 오래돼서 제가 못 알아본 거였어요.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처음엔 부담됐는데, 손님 없는 오후마다 한 장씩 읽다 보니 어느새 다 넘겼고, 그럴 만한 깊이가 있었어요. 아직 결혼이 안 무서워진 건 아니에요 ㅋㅋ. 근데 최소한 그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는 이제 알아요. 무섭다는 감정을 그냥 밀어내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 겁먹은 어린 저를 데리고 앉아서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작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도망치는 대신 마주 볼 용기가 조금 생겼어요. 급하게 다 나은 척은 안 하려고요. 아직 아프지만, 이번엔 그 아픔한테 이름이 생겼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