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연애는 더없이 좋은데, 이상하게 결혼을 떠올리면 갑자기 겁이 났어요. 정확히는 그 사람 가족들 사이에 제가 섞여 들어가는 그림이 자꾸 불안했어요. 스물다섯이면 아직 먼 얘기인데도, 좋아할수록 그 걱정이 더 커지더라고요. 명절이면 낯선 집 부엌에 어색하게 서 있는 제 모습이 미리 그려져서, 그 상상만으로 마음이 오그라들었어요. 그래서 궁합을 봤어요. 선생님이 '본인은 낯선 관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대신, 한번 마음을 열면 누구보다 깊이 뿌리내리는 구조'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시댁과의 관계도 처음엔 서먹할 수 있지만 서두르지만 않으면 오히려 오래 편안해지는 흐름이라고요. 제가 겁내던 건 결국 처음의 어색함이었지, 관계 자체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늘 처음이 느린 사람이었어요. 새 학교, 새 직장에서도 한동안은 겉돌다가, 어느 순간 누구보다 깊이 정 붙이는 쪽이었거든요. 그걸 단점으로만 여겼는데, 시댁 관계에서는 오히려 그게 강점이 된다니 좀 뜻밖이었어요. 그 뒤로 그 사람 부모님을 처음 뵀는데, 신기하게도 예전만큼 긴장이 안 됐어요. 못 하면 어쩌지가 아니라, 천천히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갔거든요. 밥을 먹는데 손이 떨려 물컵을 놓칠 뻔했지만, 예전 같으면 그 실수 하나로 밤새 이불을 걷어찼을 텐데 이번엔 그냥 웃어넘겼어요. 처음이라 그런 거지, 하고요. 여전히 조금 서툴렀지만, 이제는 그 서툶이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돌아보면 저는 겪어보지도 않은 어색함을 미리 앓고 있었어요. 오지도 않은 명절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미리 치른 셈이죠. 낯섦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그 앞에서 서툴 제가 미리 부끄러웠던 거예요. 근데 서툰 채로 시작해도 괜찮은 거였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조용히 안심이 됐어요. 이제는 그 서툶마저 천천히 통과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