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연락이 끊긴 지 석 달쯤 됐을 때였어요. 크게 싸운 것도 아니었어요. 답장이 하루 늦고 이틀 늦어지다가, 어느새 서로 읽고도 그냥 씹는 사이가 돼 있더라고요. 미워서도 아니고 무슨 큰 사건이 있어서도 아닌, 그냥 스르르 멀어진 거라 더 손쓸 방법을 몰랐어요. 스물넷이고 응급구조사예요. 남이 급한 순간엔 몸이 먼저 튀어나가는 사람인데, 정작 이 사람한테는 마지막 카톡 한 줄을 못 보내고 몇 주를 그냥 흘려보냈어요. 대화창을 열면 커서만 깜빡이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쓰고 폰을 뒤집어 놓기를 반복했죠. 근무 끝나고 텅 빈 집에 들어와 불도 안 켜고 그 창만 들여다보던 밤이 여러 번이었어요. 이대로 아무 말 없이 사라지게 두는 게 맞나 싶어서 재회 상담을 받았어요. 응급 현장에선 일 초를 안 재고 뛰어드는 제가, 카톡 한 줄 앞에서는 몇 주를 벌벌 떨었다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어요. 남 목숨은 살리겠다고 뛰면서 정작 제 관계 하나는 살릴 엄두를 못 냈으니까요. 선생님이 '이건 마음이 식어서 끊긴 게 아니라, 둘 다 자존심 때문에 먼저 손 내밀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먼저 연락하되 지난 침묵을 절대 따지지 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볍게 안부만 물으라고 콕 집어주셨어요. 무겁게 시작하는 순간 상대도 방어부터 하게 된다고요. 자존심 때문에 서로 기다리기만 하면 이대로 진짜 끝나버린다고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어요. 저는 여태 이 침묵이 저한테 관심이 없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라 둘 다 똑같이 먼저 지는 게 싫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거라니까, 괜히 헛웃음이 났어요. 그 한마디에, 몇 주째 저를 짓누르던 게 좀 가벼워졌어요. 진짜 그대로 해봤어요. 요즘도 그 병원 앞 카페 여냐고 딱 한 줄만 보냈는데, 십 분 만에 답이 왔어요 ㅎㅎ 아직 연다고, 너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요. 그 짧은 답장 하나에 손끝이 다 저릿했어요. 별거 아닌 한 줄인데 폰을 쥔 채로 한참을 그 화면만 봤어요. 그러다 지난주에 결국 그 카페에서 다시 만났어요. 마주 앉으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웬걸 자리에 앉자마자 둘 다 실없이 웃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렇게 쉬운 걸 석 달이나 끌고 있었다니 싶더라고요. 시기랑 방법을 콕 집어주신 덕분에, 그냥 소리 없이 사라질 뻔했던 사람을 다시 마주 보고 앉았어요. 헤어질 뻔한 게 아니라 그냥 둘 다 쑥스러워서 미뤘던 거였어요. 그거면 저는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