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저는 원래 이런 거 안 믿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궁합은 보고 결혼해야지, 하는 엄마의 그 한마디에 떠밀리듯 신청했어요. 세무사무소에서 온종일 숫자만 만지는 사람이라, 근거 없는 얘기는 잘 안 삼켜요. 대차대조표처럼 딱 떨어지지 않으면 못 믿는 직업병 같은 게 있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어요. 부모님 성화 잠재우려는 의무감이 반, 그래도 결혼을 앞뒀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반. 뻔한 덕담만 늘어놓으면 엄마한테는 그냥 봤다고만 하고 넘길 생각이었어요. 겉으로는 결혼 준비 잘하는 예비 신부인데, 속으로는 남한테 말 못 할 걸림돌이 하나 있었어요. 돈 쓰는 결이 저희 둘이 너무 다르다는 거요. 데이트 비용 하나 쓰는 것만 봐도 저는 십 원 단위까지 계산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좋으면 일단 긁고 보는 사람이라, 이걸로 평생 부딪히면 어쩌나 혼자 삼키고 있었거든요.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데 돈 얘기 꺼내면 속물 같아 보일까 봐 입도 못 뗐고요. 근데 선생님이 짚은 게 덕담이 아니었어요. '두 분은 잘 맞는데, 돈을 다루는 방식에서 한 분은 모으는 쪽 한 분은 쓰는 쪽이라 신혼 초에 이걸로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고 구체적으로 짚으셨어요. 제가 속으로만 걸려 하던 바로 그 지점이었어요. 어떻게 아셨지 싶어서 그 대목을 두 번 읽었어요. 그러면서 이걸 결혼 전에 미리 규칙으로 정해두면 큰 갈등은 피해 갈 수 있다고, 싸우지 말라가 아니라 어떻게 나눠 쓸지를 먼저 정하라고 방향까지 주셨고요. 부모님 등쌀에 억지로 본 건데, 정작 저희 둘이 결혼 전에 꼭 맞춰봐야 할 숙제를 알게 됐어요. 그날 저녁에 그 사람이랑 통장 얘기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어요. 속으로만 걸려 있던 걸 꺼내놓으니 오히려 후련했어요. 엄마한테는 그냥 궁합 좋다더라고만 전했고요. 사주가 맞아서라기보다, 혼자 끌어안고 있던 걸 마주 앉아 꺼내게 해준 게 저는 제일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