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같이 살아 보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왜 저는 설레기보다 먼저 불안했을까요. 서른한 살이고, 제조업 회사에서 품질관리 일을 해요. 직업이 그래서인지 저는 뭐든 미리 점검하고 위험 요소를 찾아 두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는 사람이에요. 같이 살기로 한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근데 좋은 것과 매일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사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연애할 땐 안 보이던 게 같이 살면 다 보인다는데, 저는 그 보이지 않는 걸 미리 알고 싶었어요. 잠이 안 와서 결혼 준비 카페의 후회담만 한밤중까지 읽던 날들이 있었어요. 남들 실패담을 스크롤하면서 우리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 겁내던 거죠. 다 자는 시간에 혼자 불 켜고 앉아, 아직 시작도 안 한 살림을 미리 걱정하는 제가 좀 딱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궁합을 신청했어요. 선생님이 두 사람 구조를 보시더니 '두 분은 큰 방향에서는 잘 맞는데, 갈등을 푸는 속도가 서로 많이 달라서 그 지점을 모르면 오해가 쌓인다'고 하셨어요.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야 하고, 한 사람은 혼자 시간을 가진 뒤에야 말을 꺼내는 사람이라고요. 저희가 정확히 그래요. 저는 바로 얘기하자는 쪽이고 그이는 방에 들어가 한참 있다 나오는 사람이거든요. 그동안 저는 그게 저를 무시하는 건 줄로만 알고 상처받아 왔어요. 근데 선생님이 그건 무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그 시간을 존중해 주면 오히려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한 조합이라고 하셨어요. 그 한 문단을 읽고 몇 년 묵은 오해가 스르르 풀렸어요. 제가 상처받았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그 사람 나름의 애정 방식이었다는 게요. 화가 아니라 이상하게 미안함이 먼저 올라왔어요. 그리고 동거를 시작하기 전에, 싸운 직후에 바로 결론 내려고 몰아붙이지 말고 각자 정리할 시간을 미리 정해 두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해 주셨어요. 저는 그걸 그대로 우리 규칙으로 삼았어요. 그동안 저는 그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갈 때마다 속으로 이별의 신호가 아닐까 하고 최악을 점검했어요. 품질 검사하듯 우리 관계의 불량을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켰던 거죠. 근데 그게 결함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감정을 삭이는 시간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멀쩡한 순간을 불량으로 잘못 찍어 냈나 싶었어요. 실제로 지난주에 사소한 일로 부딪쳤는데, 예전 같으면 방으로 들어가는 그 사람 등에 대고 끝까지 몰아붙였을 거예요. 이번엔 한 시간만 각자 있다 다시 앉기로 한 규칙대로 했더니, 화가 가라앉은 뒤의 대화는 완전히 다른 온도였어요. 검사만 하던 제가 처음으로 기다릴 줄 알게 된 거예요. 결혼 준비 카페에서 남들 실패담만 골라 읽으며 우리도 저렇게 될까 겁내던 밤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부질없었어요. 남의 불행을 미리 빌려다 걱정할 게 아니라, 정작 우리 둘이 어디서 어긋나기 쉬운지를 알아 두는 게 백배 나은 거였더라고요. 그걸 이제 손에 쥐었으니, 막연한 불안 대신 대비책이 생긴 거죠. 받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우리한테 문제가 없다고 해서가 아니라, 어느 지점이 약한지 정확히 알게 됐으니 대비할 수 있잖아요. 저처럼 뭐든 미리 점검해야 안심하는 사람한테는 이만한 사전 점검이 없더라고요. 요란하게 좋았다기보다, 조용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만족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