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동아리 뒤풀이에서 그 선배가 제 몫까지 안주를 덜어주는 걸 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삼 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그날따라 그 아무렇지 않은 손길이 유난히 눈에 밟혔거든요. 스물넷,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된 저한테 이 선배는 오래 편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더 헷갈렸어요. 이게 새로 생긴 마음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정을 제가 착각하는 건지. 괜히 티를 냈다가 삼 년 쌓은 편안함을 통째로 깨버릴까 봐,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어요. 이 마음이 계속 자라기만 하면 이 사람을 아예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밤마다 혼자 조마조마했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게 설레기는커녕 무서웠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편한 사람일수록, 잃을 게 더 크니까요. 썸 상담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두 사람 기운을 같이 보시더니, 오래된 사이일수록 감정이 정으로 위장돼 있어서 본인도 한참 늦게 알아차린다고, 지금 제가 느끼는 그 낯섦이 바로 신호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선배 쪽도 최근 저를 대하는 방식이 예전과 미묘하게 달라졌을 거라고 짚으셨는데, 정말 그 무렵부터 저를 챙기는 결이 달라졌던 게 하나둘 떠올랐어요. 제가 흘려보낸 장면들이 사실은 다 조각이었던 거예요. 밤늦게 그 선배 인스타 스토리만 몇 번씩 돌려보던 날들이 있었어요. 이게 나만의 착각이면 어쩌나, 괜히 좋은 사람 하나 잃는 거 아닌가 싶던 밤들이요. 별것 아닌 스토리 하나에 이 사람이 지금 누구랑 있나, 저 표정은 무슨 뜻인가 혼자 소설을 쓰다가 화면을 껐다 켰다 했어요. 적어도 그 마음이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 한결 편해졌어요. 확신이 선 건 아니지만, 적어도 헛것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어디예요. 이제는 그 낯섦을 겁내는 대신, 조금 더 지켜봐도 되겠다는 여유가 생겼어요. 5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