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chive
감정의 크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남았는지를 중심으로 남겨진 기록입니다.
무대에서 앙상블로 서는 사람이라, 저는 남 앞에서 웃는 게 일이에요. 공연 끝나고 분장을 지우면서 거울을 보는데, 정작 제 연애는 커튼콜도 없이 끝나버렸구나 싶어서 좀 헛헛했어요. 무대 위에선 그렇게 웃다가, 분장솜에 화장이 지워질수록 얼굴이 점점 제 표정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이 제일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스물일곱에 3년 만난 사람이랑 결혼 얘기가 오갔는데, 그 얘기가 나온 뒤로 그 사람이 점점 뒤로 물러나더니 결국 떠났어요. 저는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어요. 좋다며, 결혼하자며. 근데 왜. 재회 상담에서 받은 선생님 답은 제 예상과 정반대였어요. 그 사람이 저를 향한 마음이 식은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지레 눌린 거라고 하셨어요. '이 사람은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문 앞에서 겁을 먹고 뒷걸음친 거예요.' 그 문장이 정확했어요. 그 사람이 평소에도 큰 결정 앞에서 유독 얼어붙는 사람이었거든요. 특히 놀란 건, 이 사람은 밀어붙이면 더 도망가고 오히려 여유를 주면 제 발로 돌아오는 유형이라고 짚어주신 거예요. 제가 그동안 불안해서 자꾸 확인받으려 한 게 역효과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낸 것도 그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배신감이 더 컸고요. 공연 끝나고 텅 빈 대기실에 혼자 남아 화장을 지우던 밤이면, 무대 위 웃음이 다 빠져나간 얼굴로 거울 속 저를 마주하는 게 참 서러웠어요. 남들 웃기려고 배운 표정인데, 정작 저를 웃게 하던 사람은 떠났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연락을 좀 내려놨어요. 손이 근질거려도 참았고요 ㅋㅋ 그랬더니 지난주에 그 사람이 먼저 안부를 물어왔어요. 별거 아닌 안부였는데, 그 이름이 화면에 뜬 순간 손이 살짝 떨렸어요. 밀어붙이지 않고 기다린 게 처음으로 맞아떨어진 순간이었거든요. 아직 결혼 얘기까진 아니지만, 문이 완전히 닫힌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며칠 만에 밥이 제대로 넘어갔어요.